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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우리, 팔레스타인

입력 2024.10.21 21:16

수정 2024.10.21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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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원자폭탄 터뜨려서 해방시켜줬다고 하는데, 대한민국은 해방됐을지 몰라도 우리 원폭 피해자는 해방이 됐습니까.” 몇달 전 경향신문에 실린 인터뷰에서 이 말이 잊히지 않았다. 내게 해방은 1945년에 있었던, 지나간 사건이었다.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아직 닿지 못한 역사였다. 해방을 너무 쉽게 말해왔음을 반성했다. 가자지구 집단학살 1년을 앞두고 열린 집회 제목은 ‘우리는 팔레스타인 해방의 연대자’였다. 스스로에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해방을 모르고 해방의 연대자가 될 수 있을까?

일본이 조선을 점령해 조선인을 착취했다면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을 점령해 팔레스타인인을 추방했다. 점령당하지 않으려면 절멸당해야 했다. 1948년 시작된 일이다. 그러니까, 부모 잃은 아이들이, 피란 끝에 닿은 땅에 다시 집을 짓고, 자신의 운명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며, 아이를 키우는 부모가 되었으나, 다시 마을과 함께 불에 타고 부서져, 유언도 듣지 못한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평생소원으로 물려받고, 다시, 물려줄 것은 똑같은 소원밖에 없는 부모가 되어, 눈앞에서 쓰러지는 아이를 보아야 하는 시간이, 역사라 이름 붙여도 된다면, 팔레스타인의 역사다.

지난 1년 가자지구 공습에서 사망한 이들의 명부를 봤다. 1948년 이전에 태어난 사람이 700명, 2024년에 한 살이 되어보지 못한 사람이 710명. 운 좋게 살아남아 그 모든 시간을 지켜본 것이 행운일까, 추방도 학살도 착취도 알기 전 생을 마감한 것이 행운일까. 이 죽음들을 어떻게 애도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지난해 10월 이후 벌어진 전례 없는 규모의 학살은, 학살의 전례가 쌓인 결과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만들어낸 기억과 함께 쌓였다. 유대인이 아주 오래전 팔레스타인에서 쫓겨났다는, 그래서 유대인 대학살의 참극에 이르렀으므로, 팔레스타인을 점령하여 유대인의 나라를 세우는 것이 정의라는, 날조된 기억은 정의를 날조했다. 팔레스타인 지도자가 사살되자, 또 다른 나라의 정치 지도자는 “정의의 순간”(바이든)이라고 말하는 일에 거리낌 없다. 세계는 지금,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살아남아야 할 이유를 증명하라고 독촉하고 있다.

“광복의 완성은 통일.” 윤석열 대통령은 북녘으로 자유를 확장해 한반도에 통일 대한민국을 세우자고 했다. 종말 운운하는 날선 말로 전쟁 위기를 부추기는 일이 해방을 완성한다는 역사의 전도 앞에서 1948년 또 다른 학살의 역사를 떠올렸다. 식민자는 물러갔으나 아직 우리의 해방은 오지 않았다고 여긴 사람들이 무장하여 봉기한 ‘제주 4·3’, 절멸의 이유는 ‘빨갱이’였고 대한민국은 아직 그 역사를 소화하지 못한다. 역사와 서둘러 작별하지 않으려 문장을 써나간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은 대통령에게 그저 “국가적 경사”다.

올해 노벨 평화상을 니혼히단쿄(일본원수폭피해자단체협의회)가 받았다. 미국과 핵 공유를 바라는 일본 총리는 떨떠름하게 “매우 뜻깊은 일”이라 하고, 원폭을 투하했던 미국의 대통령은 “핵무기 재앙이 초래한 인적 피해”에 사과하는 대신 축하하고, 원폭 피해가 이어지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일언반구가 없다. 식민주의는 어디서도 반성되지 않는다. 해방은 미완이나 휴전선 앞에 멈춘 것이 아니다. 죽여도 되는 사람을 만드는 역사가 지속되고 있어서, 아직 해방은 오지 않았다. 해방은, 평등한 애도를 향한 투쟁인지도 모르겠다.

“계속 피가 흐르고 내가 통증을 느껴야 한대.” <작별하지 않는다>(한강)에서 인선은 손가락 봉합수술을 하고 절단된 손을 살리기 위해 매일 바늘로 손가락을 찔러야 한다. 사라지지 않겠다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의지도 “피와 전류가 함께 흐르는 곳에서” 살아 있을 것이다, 해방이 올 때까지. 어쩌면 ‘우리는’ 대신 이렇게 말해야겠다. 우리, 팔레스타인, 해방의 연대자.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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