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 아이돌그룹 뉴진스의 멤버 하니 팜씨가 나타나자 국회가 들썩였다. 환노위가 가요계 직장 내 괴롭힘 사건과 관련해 하니 팜씨를 참고인으로 출석시키면서 소동이 벌이진 것이다. 의원들의 질의는 하니 팜씨 사건에 집중됐다. 이 과정에서 정인섭 한화오션 거제사업장 사장과 의원 일부가 함께 사진을 찍으려다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날 국감 광경을 지켜본 한편에선 부러워하는 눈빛과 함께 한숨이 흘러나왔다. 과로사가 반복되고 있는 쿠팡 노동자, 불법파견이 인정됐지만 여전히 싸워야 하는 현대제철 노동자, 초과근무 수당 감축을 강요받는 해양수산부 청원경찰, 밀린 임금을 돌려받지 못한 삼부토건 노동자 등에게는 발언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하니 팜씨처럼 환노위 증인석에 서지 못한 이들은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달라”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쿠팡 택배 노동자 “과로사 대책은 보이지 않았던 국감”
쿠팡 택배 노동자 강민욱씨는 22일 기자와 통화하면서 “쿠팡 노동자 과로사에 대한 구체적인 대책은 전혀 보이지 않았던 국감이었다”라며 착잡해했다. 지난 10일 국감에 출석한 홍용준 쿠팡CLS 대표는 연이은 쿠팡 노동자들의 사망과 관련해 사과했으나 재발 방지책 마련에는 소극적이었다. 쿠팡 노동자들이 과로의 원인으로 꼽은 ‘클렌징 제도’(배송 수행률 등을 채우지 못하면 배송 구역을 회수하거나 변경하는 제도) 폐지와 야간 근무 개선을 위한 사회적 논의 참여 등에는 즉답을 피했다. 강씨는 “쿠팡이 실질적인 대책도 내놓지 못하면서 사회적 대화도 거부하는 것을 보면서 노동자들의 현실은 전혀 변화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강씨는 ‘국감에 서게 되면 하고 싶은 말이 뭔가’라는 질문에 “국회에 쿠팡 청문회를 요구하고 쿠팡을 사용하는 1600만 국민들께는 희생과 죽음이 전제되는 배송을 용납해야 하는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쿠팡에서는 올해 과로로 숨진 쿠팡 로켓배송 기사 정슬기씨를 비롯한 노동자들이 잇따라 사망했다. 전국택배노조와 과로사 택배기사 유가족은 지난 16일부터 서울 영등포구 국회 앞에서 농성에 돌입해 “국회 합동 청문회를 통해 제대로 된 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현대제철 하청 노동자 “현대제철도 국감 세워달라”
현대제철 하청 노동자 이상규씨는 “노동청과 법원 판결을 무시하는 현대제철을 국감에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2021년 노동청은 현대제철 당진공장·순천공장 사내하청 노동자들에 대해 불법파견을 인정하고 원청업체에 직접고용을 지시했다. 그러나 현대제철은 이를 이행하는 대신 자회사를 설립해 자회사 정규직으로의 전환을 추진했다. 근로자지위 확인 소송에 나선 당진공장 노동자들은 1심에서 승소했다. 순천공장 노동자들은 지난 3월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했다. 하지만 이들은 판결이 확정받은 뒤 당진공장으로 인사발령이 났다. 현대제철 하청 노동자들은 “현대제철이 법원 판결을 온전히 이행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씨는 국감 자리에 서게 된다면 “불법 파견 인정을 위해 10년을 넘게 싸워왔는데 승소하고도 제대로 구제받지 못하는 상황에 대해 국회가 관심을 갖고 구제책을 마련해달라고 말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국회는 노동자의 불법 행위를 따지는 데에만 엄격할 게 아니라 불법을 저지르고도 시정하지 않는 기업들을 바로 잡아야한다”고 했다.
해수부 청원 경찰 “초과근무 수당은 감축, 근무환경 더 열악해져”
청원경찰의 처우 문제도 환노위에서 다뤄지지 못했다. 해양수산부 청원경찰지부에 따르면 해수부는 올해 세수 결손을 메우기 위해 청원경찰에 대한 초과근무수당을 줄이고 대체근무를 최소화할 계획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청원경찰들은 “기획재정부 세수정책 실패가 청원경찰들에게 전가되고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청원경찰은 국가기관·지방자치단체 등 국가중요시설과 사업장 등을 보호하기 위해 배치되는 경찰이다.
청원경찰 김민수씨는 “규정상 초소에서 2명 이상이 근무해야 하지만 인력 부족 때문에 규정을 지키면서 근무하려면 휴게시간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초과근무도 불가피한 상황”이라며 “해수부는 이런 상황에서 초과근무 수당까지 감축하려 한다”고 말했다.
김씨는 국감에 서게 된다면 “근무 경력이 15년을 넘어야 경장 월급을 받는 열악한 처우로 인해 비번인 날도 배달 아르바이트 등으로 내몰리는 실태를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해수부 청원경찰지부는 청원경찰 처우 개선을 위한 입법 운동을 계속할 예정이다.
삼부토건 노동자 “상습 임금 체불에 강력한 조치 필요해”
두 달째 임금이 체불되고 있는 삼부토건 노동자들의 문제도 국감에서 다뤄지지 않고 있다. 삼부토건 노동자 문정곤씨는 “사측이 45억~50억원 규모의 임금을 체불하고 있는 데다가 4대 보험 납부를 하지 않으면서 노동자들의 신용 등급에도 영향을 미치면서 삼부토건 노동자들은 이중고를 겪고 있다”고 전했다. 삼부토건의 임금체불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월에 전 직원 급여가 지연됐다. 지난 3월에도 대리급 이상 직원 임금 지급이 지연됐고 6~7월에도 임금 지급이 지연되는 등의 사태가 벌어졌다.
문씨는 “상습적으로 임금체불을 하는 사업장에는 강력한 조치를 할 수 있도록 국회가 나서달라고 전하고 싶다”며 “고용노동청에 임금체불 진정을 넣어도 수많은 시간이 걸려 노동자들의 처우가 더 열악해지는 상황이 개선돼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