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만약 사실이라면…”

손제민 논설위원

국가정보원이 지난 18일 ‘북한 특수부대 러·우크라 전쟁 참전 확인’ 보도자료를 낸 뒤 국가안보실·외교부·국방부가 분주해졌다. 윤석열 대통령은 21일 여당 대표 회동에 이목이 쏠린 와중에 나토 사무총장 통화, 영국 외교장관 면담을 갖고 “가용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대응”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 같은 말을 쏟아냈다. 외교부 차관은 주한 러시아대사를 초치해 “가장 강한 언어로 규탄한다”고 했고, 정부는 ‘우크라이나에 공격용 무기까지 단계적 지원’ 입장을 냈다.

반면 미국처럼 이번 전쟁에 깊이 개입해온 국가는 ‘북한군 파병설’에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미 국방장관에 이어 백악관 관계자는 21일 “만약 사실이라면 위험하고 매우 우려스러운 상황 전개가 될 것”이라고 했다. 국정원이 위성사진까지 공개한 지 나흘이 지났는데 미국은 왜 한사코 “만약 사실이라면”이라는 단서를 달고 판단을 유보하는 것일까. 그간 미국이 북한의 러시아 무기 지원 정보를 공개하며 한국에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을 압박해온 것과 정반대 상황이다.

한·미가 가진 정보가 다른 걸까. 대통령실은 국정원 정보가 “미국·우크라이나 등과 오랜 시간 함께 모으고 공유하며 만든 정보”라고 했다. 그런데 왜 한국은 앞서가고, 미국은 신중한 걸까. 결론적으로, 양국이 처한 정치적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미국은 대선을 앞두고 있다. 정권이 교체될 수도 있는 가운데 이미 장기화된 전쟁의 확전을 암시하는 이번 사안이 달갑지 않다. 반면 한국은 북·러 군사협력 여파를 더 예민하게 느낄 위치에 있다. 그렇기는 해도 연일 러시아와 막말을 주고받으며 위기감을 고조시키는 정부 대응은 과도하게 느껴진다. 무엇보다 이 사안은 윤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코너에 몰린 상황에서 대통령 역할을 적극 주장할 수 있는 일이라는 점을 간과하기 어렵다.

북한 지상병력의 대규모 전선 배치가 사실이라면 심각한 일이고 대책도 마련해야 한다. 하지만 이는 동시에 북한과 러시아의 절박한 처지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북한 군복 입은 젊은이 1500명이 러시아 군함을 타고 블라디보스토크로 이동한 것까지는 알지만, 그들이 어떤 일을 할지 확실히 모른다. 지금보다 차분해질 필요가 있다.

북한 병사들이 러시아 연해주 세르기예프스키 훈련소에서 보급품을 지급 받는 모습이라며 우크라이나가 공개한 영상. 우크라이나군 전략소통·정보보안센터(SPRAVDI) X 계정 캡처

북한 병사들이 러시아 연해주 세르기예프스키 훈련소에서 보급품을 지급 받는 모습이라며 우크라이나가 공개한 영상. 우크라이나군 전략소통·정보보안센터(SPRAVDI) X 계정 캡처


Today`s HOT
5년 넘게 재건축 끝에 모습을 드러낸 노트르담 많은 선수가 참가하는 FIS 알파인 스키 월드컵 훈련 2024 베네수엘라 미인대회 미국에서 일어난 규모 7.0의 지진
브라질의 낙태 금지 개정안에 대해 시위하는 국민들 모스크바 레드 스퀘어에서 열린 아이스 링크 개장식
엘살바도르 광대의 날 기념행사 성지를 방문해 기도 올리는 무슬림 순례자들
뉴욕 테니스 경기 우승자, 엠마 나바로 사우디 아라비아의 유적들 식량난을 겪는 팔레스타인 사람들 양국 관계 강화의 시도, 괌과 여러 나라를 방문한 대만 총통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