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80주년 경향신문

역지사지의 달인이 되자



완독

경향신문

공유하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X

  • 이메일

보기 설정

글자 크기

  • 보통

  • 크게

  • 아주 크게

컬러 모드

  • 라이트

  • 다크

  • 베이지

  • 그린

컬러 모드

  • 라이트

  • 다크

  • 베이지

  • 그린

본문 요약

인공지능 기술로 자동 요약된 내용입니다. 전체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본문과 함께 읽는 것을 추천합니다.
(제공 = 경향신문&NAVER MEDIA API)

내 뉴스플리에 저장

역지사지의 달인이 되자

입력 2024.10.23 20:33

수정 2024.10.23 20:38

펼치기/접기

입시철이 다가온다. 사학과를 지망한 학생들에게 “왜 역사공부를 하려고 하나요?”라고 묻는 경우가 있다. 다는 아니지만 이렇게 답하는 학생이 있다. “일본의 역사왜곡과 중국의 동북공정에 맞서는 선봉에 서고 싶습니다.” 거대야당이 추진하려고 한다는 역사왜곡처벌법에 이 학생은 쌍수를 들고 환영할 것이다. 또 이렇게 답하는 학생들도 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가 없다고 해서 역사를 공부하려고 합니다”, “불변의 역사적 진리를 탐구하고 싶습니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역사의 정의를 세우고 싶습니다”. 이들의 표정은 자못 비장하며, 어조는 확신에 차 있다.

바로 이 ‘확신’이 문제다. 이 학생들의 발언, 표정, 어조는 사학(史學)이 아니라 종교 혹은 경학(經學)에 어울리는 것들이다. 내 주변 교수님들 중 부인에게 이끌려 교회에 나가는 분들이 간혹 있다. 어떤 분들은 목사님 설교에 논리의 비약과 사실인지 의심되는 점들이 보여 집중이 안 된다고 푸념하곤 한다. 교회는 믿어서 가는 것이지 분석·검증하러 가는 게 아니다. 죽은 사람이 사흘 만에 부활했고, 처녀가 애를 낳았다는 말씀은 신앙의 대상이지 시시비비 대상이 아니다. 그러니 딴생각 말고 경청해야 한다. 그러나 대학은 교회가 아니다. 사학과는 신념이 아닌, 회의(懷疑) 장이다.

성리학 같은 경학은 절대적 규범, 불변의 진리를 상정(想定)하고 그걸 탐구, 실천하는 분야다. 반대로 역사학은 세상과 인간사의 끊임없는 변화를 탐구하는 학문이다. “이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 말고 모든 것은 변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역사학이다. 그러니 위의 학생이 탐구하고 싶다는 ‘불변의 역사적 진리’는 적어도 사학과에서는 배울 수 없다.

역사학은 사실의 학문인 만큼이나 해석의 학문이기도 하다. 사료에 철저히 기반한다는 엄정한 룰을 지키는 한도 내에서 다양한 해석을 할 자유를 부여하는 학문이다. 내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가 없다’는, 자못 멋지게 들리는 말이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무래도 저 ‘역사’는 미리 하나로 정해져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저 ‘역사’와 다른 다양한 역사상을 제시할 자유를 허락해줄지 걱정이 되어서다. ‘역사의 정의’는 하늘이 알고 땅이 아는 자명한 것이니 ‘탐구’할 필요는 없고 ‘세우기’만 하면 된다고 하지는 않을까 우려되어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역사학은 확신과 신념이 아니라 ‘회의(懷疑)’의 학문이다. 확고하다고 생각해왔던 사고방식이나 가치관이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가르쳐주는 분야다. 내가 당연하다고 여겨왔던 것들이 특정한 역사적 과정을 거쳐 특정한 시기에 형성된 것에 불과하고, 따라서 그것도 결국 변할 수밖에 없다는 ‘진리’를 깨닫게 해준다. 역사를 좋아하고 공부하는 사람 중에는 자신의 생각을 회의할 준비가 전혀 안 돼 있고, 오히려 역사에서 그 생각의 ‘정당성’을 보증받는 데 몰두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러려면 그냥 그렇게 ‘믿으면’ 되지, 굳이 어려운 역사를 공부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이지만 주로 과거가 말하게 해야지 현재의 내가 너무 많은 말을 해서는 곤란하다. 과거에 좀 더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 과거엔 실로 온몸에 땀과 흙, 혹은 피가 묻은 이들이 가득 차 있다. 역사 속에서 살아온 인간들은 구름 위 존재들이 아니라, 땅바닥을 박박 기어온 사람들이다. 100% 완전무결한 사람들이 아니다. 아니 10%만이라도 평가해줄 구석이 있다면 대단한 것이다. 우리는 역사에, 역사를 살아온 사람들에게 너무 많은 걸 바라선 안 된다. 그렇게라도 살아낸 것에 존경까지는 아니더라도 이해심을 갖고 대해야 한다. 항상 내가 저 시대, 저 형편에 있었다면 어떻게 했을까를 자문하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역사를 대하는 사람들은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달인이어야 한다.

박훈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

박훈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

  • AD
  • AD
  • AD

연재 레터를 구독하시려면 뉴스레터 수신 동의가 필요합니다. 동의하시겠어요?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콘텐츠 서비스(연재, 이슈, 기자 신규 기사 알림 등)를 메일로 추천 및 안내 받을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레터 구독을 취소하시겠어요?

뉴스레터 수신 동의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서비스를 메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 동의를 거부하실 경우 경향신문의 뉴스레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지만 회원가입에는 지장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1이메일 인증
  • 2인증메일 발송

안녕하세요.

연재 레터 등록을 위해 회원님의 이메일 주소 인증이 필요합니다.

회원가입시 등록한 이메일 주소입니다. 이메일 주소 변경은 마이페이지에서 가능합니다.
이메일 주소는 회원님 본인의 이메일 주소를 입력합니다. 이메일 주소를 잘못 입력하신 경우, 인증번호가 포함된 메일이 발송되지 않습니다.
뉴스레터 수신 동의
닫기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서비스를 메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 동의를 거부하실 경우 경향신문의 뉴스레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지만 회원가입에는 지장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1이메일 인증
  • 2인증메일 발송

로 인증메일을 발송했습니다. 아래 확인 버튼을 누르면 연재 레터 구독이 완료됩니다.

연재 레터 구독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경향신문 홈으로 이동
뉴스레터 구독
닫기

전체 동의는 선택 항목에 대한 동의를 포함하고 있으며, 선택 항목에 대해 동의를 거부해도 서비스 이용이 가능합니다.

보기

개인정보 이용 목적- 뉴스레터 발송 및 CS처리, 공지 안내 등

개인정보 수집 항목- 이메일 주소, 닉네임

개인정보 보유 및 이용기간- 원칙적으로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목적이 달성된 후에 해당정보를 지체없이 파기합니다. 단, 관계법령의 규정에 의하여 보존할 필요가 있는 경우 일정기간 동안 개인정보를 보관할 수 있습니다.
그 밖의 사항은 경향신문 개인정보취급방침을 준수합니다.

보기

경향신문의 새 서비스 소개, 프로모션 이벤트 등을 놓치지 않으시려면 '광고 동의'를 눌러 주세요.

여러분의 관심으로 뉴스레터가 성장하면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등의 매체처럼 좋은 광고가 삽입될 수 있는데요. 이를 위한 '사전 동의'를 받는 것입니다.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광고만 메일로 나가는 일은 '결코' 없습니다.)

뉴스레터 구독
닫기

닫기
닫기

뉴스레터 구독이 완료되었습니다.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
닫기

개인정보 이용 목적- 뉴스레터 발송 및 CS처리, 공지 안내 등

개인정보 수집 항목- 이메일 주소, 닉네임

개인정보 보유 및 이용기간- 원칙적으로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목적이 달성된 후에 해당정보를 지체없이 파기합니다. 단, 관계법령의 규정에 의하여 보존할 필요가 있는 경우 일정기간 동안 개인정보를 보관할 수 있습니다.
그 밖의 사항은 경향신문 개인정보취급방침을 준수합니다.

닫기
광고성 정보 수신 동의
닫기

경향신문의 새 서비스 소개, 프로모션 이벤트 등을 놓치지 않으시려면 '광고 동의'를 눌러 주세요.

여러분의 관심으로 뉴스레터가 성장하면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등의 매체처럼 좋은 광고가 삽입될 수 있는데요. 이를 위한 '사전 동의'를 받는 것입니다.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광고만 메일로 나가는 일은 '결코' 없습니다.)

닫기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