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의 소설이 주는 교육적 힘은 참으로 대단하다. 이번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한강은 한국 사회를 단번에 ‘문학 학습’의 열풍 속으로 몰아넣었다. 좋은 교사는 한 반 아이들을 공부하게 만들지만, 좋은 작가는 그 책을 읽는 한 사회를 공부하게 만든다.
인간의 학습은 삶과 역사 전체에서 일어난다. 인간은 마치 호흡하듯 숨쉬는 순간마다 뭔가를 감각하고, 생각하며, 학습한다. 새로운 학습은 오래된 관습의 틀을 쪼개며, 역사적 기억의 상처에서 새살이 돋게 만든다. 특히 문학 학습은 교육의 역사에서 그 중심핵의 역할을 담당해왔다.
문학은 인간의 실존적 문제상황을 직시하고 그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표’를 던지게 해 주며, 존재와 인식 속 깊이 잠재된 질문들을 꺼내어 정면으로 응시하게 해 준다. 이런 문제들은 때로는 너무나 무겁고 아파서 결코 제대로 응시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작가들은 이런 치열함을 누구보다도 먼저 경험하며, 결코 피하지 않는다. 어느 인터뷰에서 작가 한강은 이렇게 말한다.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이 경험, 감정, 나의 인간에 대한 질문, 모든 회의와 의심들, 그런 것들로부터 도망하면 좋죠. (하지만) 다시 오면 그대로 있잖아요? 그래서 결국은 대결을 해야 되는 거예요. 너무 힘들죠. 대결하기 싫죠. 그래도 해야 되잖아요.”
한강의 작품뿐만 아니라, 온 힘을 다해 쓴 좋은 글들은 자신만의 정면승부를 통해서 표현해낸 아픔과 두려움을 독자들도 치열하게 경험하도록 밀어붙인다. 그 속에서 날것으로서의 그 아픔이 그대로 독자들에게 공명되도록 하는 탁월한 능력을 표현한다. 단어와 문장들은 직접 보고 듣는 것보다 훨씬 더 세밀하게 살과 뼈를 쪼갠다.
이렇게 쓰인 작품이 결코 재미있게 술술 읽힐 리가 없다. 이를 통한 ‘배움’은 그 치열함을 작가의 손을 잡고 함께 경험해 나가는 데에서 나오며, 결코 객체화된 스토리 요약본을 통해서 얻을 수 없다. 그래서 좋은 작품을 읽는 일은 교과서를 펼쳐놓고 공부하는 것만큼이나 난해하며, 두려우며, 또한 인내가 필요하다.
좋은 글은 개인의 감수성을 넘어 사회적 담론을 생성하는 공론의 장을 창출한다. 그가 받은 노벨 문학상은 결코 작가 한강 한 사람의 천재적 감수성을 칭송하는 상이 아니다. 스웨덴 한림원이 가장 먼저 치켜세운 <소년이 온다>라는 소설의 실제 저자는 어쩌면 그 시대와 역사 자신일지 모른다. 작가 한강은 그 시대와 역사가 직접 말할 수 있도록 입을 빌려준 훌륭한 매체일 수 있다. 이 매체를 통해서 ‘말할 수 없도록 침묵이 강요된’ 사람들, 즉 그람시나 스피박이 말하는 서벌턴(subaltern)들이 역사에서 걸어나와서 대중들에게 말을 건다.
돌아보면, 이번 노벨 문학상 수상 사건은 기존의 역사논쟁, 블랙리스트 사건 등과 얽히면서 좁아져가던 공론장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하나의 작품이 그간 서랍 속에 잠자던 쟁점들을 부활시키고 이를 통해 무수히 많은 새로운 담론과 지식을 생성하며, 이 과정에서 시민들은 새로운 학습의 루프 안으로 초대된다.
작품이 논쟁적일수록 그 작품들이 매개되어 전개되는 수많은 토론과 논쟁들은 한 사회의 구습을 진보적으로 다시 바라보게 만들며, 새로운 공론장을 확대해 나가는 데 기여한다. 민주적 참여에 필수적인 것으로서의 하버마스의 ‘공론장’이라는 개념은 사실상 시민들의 학습 장면을 촉발하는 일종의 배치적 장치로서의 ‘학습-공론장’이라는 표현으로 재규정될 수 있다. 공론장 개념은 늘 학습과 결합된 형태로 이해될 필요가 있다. 공론장이 시민들의 사회적 합의와 대타협을 도출하는 담론적 공간이라면, 이러한 공론장은 반드시 깊고 넓은 학습을 전제로 한다. 그래서 공론장은 평생학습의 장이다. 그동안 우리가 읽어온 무수히 많은 문학작품들은 우리 사회에 논쟁의 불씨를 던졌고, 학습-공론장의 문을 열었다. 문학 작품들은 그래서 반도체나 인공지능만큼이나 소중한 우리의 자산이며 미래이다.
마지막으로, 최근 작가 한강의 작품을 학생들이 직접 읽도록 하는 것이 교육적인가라는 질문이 뜨겁다. 예컨대 경기도 몇개 학교에서 한강의 작품을 유해도서로 지정했던 사건은 매우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문학 작품에 담긴 치열하고 리얼한 표현들을 어린 학생들이 직접 읽도록 하는 것이 부담스럽다는 견해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정부가 나서서 ‘블랙리스트’ 혹은 ‘유해도서’ 등을 지정할 수는 없다. 그보다는 교사와 학부모가 함께 만나서, 비교적 여러번에 걸쳐서, 이 책들을 직접 읽고 토론하면서 무엇이 유해하고 유익한지를 논의하는 과정을 통해서 각자의 답을 도출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