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너의 역사
설혜심 지음
휴머니스트|672쪽|3만8000원
“아주 바쁠 때 의견을 물으러 온다. 긴 여행에서 방금 집으로 돌아온 상대방에게 산책하자고 한다.”
이 같은 사람을 뭐라고 부를까? 약 2300년 전 그리스 철학자 테오프라스토스는 이 같은 사람들을 ‘눈치 없는 사람’이라 지칭했다. “가장 곤란한 시간을 절묘하게 골라 고통스러울 만큼 귀찮게 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친구이자 뛰어난 철학자였던 테오프라스토스는 <성격의 유형들>에서 아테네 거리에서 마주칠 법한 꼴사나운 사람의 특징을 30개로 나눠 구체적으로 묘사한다. ‘가식을 부리는 사람, 아부하는 사람, 자기중심적인 사람’ 등 그가 열거한 성격 유형은 지금도 주변에서 찾아볼 수 있을 만큼 현실적이고 생생하다. 설혜심 연세대 사학과 교수는 <성격의 유형들>이 서양 예법서의 시원이 되는 책이라고 말한다.
<매너의 역사>는 고대부터 20세기까지 쓰인 서구의 예법서 100권을 분석한 노작이다. 그런데 굳이 지금 ‘서구 매너의 역사’를 알아야 할까? 저자 또한 ‘꼰대’처럼 보일까 봐 저어했다고 털어놓는다.
하지만 책의 첫 장부터 그런 의혹은 사라진다. 예의범절의 도덕과 철학 등 관념적인 이야기가 아닌 예법서에 나오는 구체적 행동 지침에 초점을 맞춘 책은 흥미로울뿐더러 과거와 현재의 시간차를 무색하게 하는 유사한 사례와 경향 때문에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영국사를 전공한 저자는 영국의 매너를 중심으로 논의를 펼쳐나간다. 18세기 영국의 경제적 성장은 ‘젠틀맨’으로 대표되는 중간계급과 ‘폴라이트니스’라는 소탈한 영국식 예절을 등장시켰다. 하지만 상류층이 신흥부자들을 배제하기 위해 엄격한 에티켓을 만들면서 ‘구별 짓기’가 시작된다.
저자는 19세기 소비사회 발달과 더불어 발달한 쇼핑 에티켓과 20세기 여성이 사회에 진출하면서 등장한 ‘직장 여성 에티켓’까지 두루 살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