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동호, 동호들에 대한 소고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이 더없이 반가웠다. 오래전 그의 책 <소년이 온다>를 접하고 느낀 전율감으로 거의 모든 그의 작품들을 읽고 소장해 왔다. 언론과 세간이 주목하고 있는 최근의 호들갑스러운 면면들에서 다소 비켜나 작가에 대한 남다른 공감의 심정이 일렁인다. 소소하게나마 연대감이 들기 때문이다.
스웨덴 한림원이 수상 기준으로 택한 그의 소설 중 하나인 <소년이 온다>는 1980년 5월 광주민주항쟁의 비극적 역사가 배경이다. 주인공 격인 소년 ‘동호’의 입을 빌려 읽히는 단어와 문장들이 아프게 가슴을 짓누른다. 44년 전 푸릇한 봄 햇살 아래 무자비한 폭력과 거침없는 핏빛 살상으로 물들었던 광주. 오월 광주를 망각의 바다 저편으로 넘기는 게 불가한 일임을 다시 알아차리게 된 때문은 아닐까.
거기에 더해 또 다른 ‘동호’들이 눈에 들어서이기도 하다. 도청에서 금남로에서 또 다른 길거리와 도처에서 이름없이 스러지거나 사라진 동호, 동호들. 살아남았어도 그 이름 하나 기억되지 못하는 또 다른 동호, 동호들이 눈에 밟히는 것이다.
지난 시기 수년간 매주 광주를 오가며 1980년 당시 시민군으로 거리를 누빈 이들과 치유와 회복의 여정을 함께한 적이 있다. 사진을 매개로 불안과 두려움, 환희와 성취 같은 자신의 내적 감정과 대면하면서 스스로 자기존재성의 가치를 알아차리도록 돕는 치유 프로그램이었다. 특히 기억나는 것은 프로그램에 참여한 ‘늙은’ 시민군들이 직접 두려움과 분노의 기억공간을 찾아가 그곳을 회복과 치유의 거처로 새롭게 변화시키는 모습들이다. 지하실에 갇혀 사지가 묶인 채 고문을 받거나 거리에서 붙잡혀 구타를 당하거나 함께 싸우던 동지가 총에 맞아 죽어 쓰러진 현장 등 악몽의 공간들. 따라서 그 공간과 다시 대면한다는 것은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사진 촬영을 위해서가 아니라 심리적 상처를 스스로 보살피고 회복과 성장을 이루기 위해, 즉 살아내기 위해, 그들은 그 장소를 반복적으로 찾아갔다.
매년 5월에만 기억되는 또 다른 동호씨가 아닌, 그리고 더 이상 무명씨나 단지 시민군 출신으로만 불릴 수 없는 그들의 이름을 잠시 떠올려 본다. 나는 작가 한강이 <소년이 온다>를 통해 전하고자 한 진의 중 하나는 그들의 이름을 기억하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의 이름을 불러본다. 사진 왼쪽부터 서정열님, 이행용님, 박갑수님, 이성전님, 이무헌님, 양동남님, 곽희성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