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담함과 피로를 견디게 하는 힘

강윤중 기자

※신문 1면이 그날 신문사의 얼굴이라면, 1면에 게재된 사진은 가장 먼저 바라보게 되는 눈동자가 아닐까요. 1면 사진은 경향신문 기자들과 국내외 통신사 기자들이 취재한 하루 치 사진 대략 3000~4000장 중에 선택된 ‘단 한 장’의 사진입니다. 지난 한 주(월~금)의 1면 사진을 모았습니다.

■10월 21일

<울긋불긋 한계령...단풍 절정은 이제부터> 20일 강원 양양군 설악산 한계령 일대가 오색 단풍으로 물들어 있다. 늦더위 여파로 가을 단풍도 늦어졌다. 산 전체가 80%이상 물드는 단풍 절정시기는 이번주 오대산과 설악산을 시작으로 전국의 산으로 번져갈 전망이다. 권도현 기자

<울긋불긋 한계령...단풍 절정은 이제부터> 20일 강원 양양군 설악산 한계령 일대가 오색 단풍으로 물들어 있다. 늦더위 여파로 가을 단풍도 늦어졌다. 산 전체가 80%이상 물드는 단풍 절정시기는 이번주 오대산과 설악산을 시작으로 전국의 산으로 번져갈 전망이다. 권도현 기자

1면 사진을 고려하며 뉴스를 끼적거립니다. 북한군 러시아 파병, 하마스 수장 신와르 사망, 김건희 여사 주가조작 무혐의, 회동 앞둔 윤 대통령-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이 심란한 뉴스 메모에 ‘단풍 절정’을 추가합니다. 속이 조금 개운해지는 것 같으면서도 뭔가 좀 ‘한가하다’ 싶습니다. 뉴스의 기본값이 대체로 긴장과 갈등이어서 그런 모양입니다. 그럴수록 ‘한가한’ 사진의 필요성을 느낍니다.

우크라이나 정부가 북한군이 보급품을 받는 모습이라고 설명한 영상을 캡처해놓고 1면 사진이 될지를 가늠해 봅니다. 공식 확인이 안 된 ‘추정되는~’이라 설명을 쓸 수밖에 없는 희미한 캡처 이미지보다, 울긋불긋 쨍한 설악산 단풍사진이 낫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드론으로 내려다본 한계령 일대의 모습이 장관입니다.

■10월 22일

<윤 대통령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동훈 대표는 ‘제로 콜라’>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파인그라스에서 정진석 대통령비서실장이 배석한 가운데 면담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 대통령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동훈 대표는 ‘제로 콜라’>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파인그라스에서 정진석 대통령비서실장이 배석한 가운데 면담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의 면담사진을 기다렸습니다. 사진은 대통령실 전속사진 담당자가 찍어서 제공이 될 예정이었습니다. 둘이 마주보고 앉아 대화를 하는 사진을 짐작합니다. 면담의 가장 기본인 사진이지요. 대통령실의 일이니 그쪽의 원칙과 계산이 있을 테지만, 매번 출입 사진기자의 배제는 유감입니다. 보여주고 싶은 사진만 제공하겠다는 의미로 읽히기 때문입니다. 사진기자는 관계를 드러내는 사진을 좋아합니다. 면담 전후로 펼쳐지는 찰나의 표정과 제스처를 노립니다. 관심 높은 뉴스인데 대통령실 입맛에 맞는 사진만 받아 쓸 수밖에 없는 게 현실입니다. 해석이 들어갈 것 같은 사진은 원천봉쇄가 되는 거죠. 이날 면담은 둘 사이의 갈등만 확인한 ‘빈손 면담’이었습니다. 81분간의 맹탕 회동을 표현한 사진은 당연히 제공되지 않았습니다.

■10월 23일

<우크라 수도에서 만난 젤렌스키 대통령과 오스틴 미 국방장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왼쪽에서 네 번째)이 21일 우크라이나를 방문한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오른쪽에서 세 번째)과 21일(현지시간) 수도 키이우에서 만나 러시아에 대응하기 위한 양국의 군사협력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 회담 후 젤렌스키 대통령은 미국이 우크라이나 국방력 강화를 위해 8억달러(약 1조1030억원) 규모의 군사 원조를 제공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EPA연합뉴스

<우크라 수도에서 만난 젤렌스키 대통령과 오스틴 미 국방장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왼쪽에서 네 번째)이 21일 우크라이나를 방문한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오른쪽에서 세 번째)과 21일(현지시간) 수도 키이우에서 만나 러시아에 대응하기 위한 양국의 군사협력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 회담 후 젤렌스키 대통령은 미국이 우크라이나 국방력 강화를 위해 8억달러(약 1조1030억원) 규모의 군사 원조를 제공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EPA연합뉴스

대통령실이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열고 북한 전투병력의 러시아 파병과 우크라이나 전쟁 참전 대응 방안 논의했습니다. 앞서 국정원은 북한의 1200명 규모 파병을 공식 확인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날(22일 기준) 미국 정부는 한국 정부의 발표에 “파병이 사실이라면 매우 우려되는 상황”이라며 애매하게 표현했습니다. 북한은 “근거 없는 소문”이라고 하고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발 북한군 관련 영상은 여전히 ‘추정’이라고 밖에 쓸 수 없습니다. 조작 가능성 또한 고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뜨거운 뉴스지만 쓸 수 있는 이미지는 제한적입니다. 추정되는 사진이 1면에 큼지막하게 자리잡기는 어렵습니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수도 키이우에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과 만나 군사협력 문제를 논의하는 ‘확실한’ 외신사진을 1면에 썼습니다.

■10월 24일

<이스라엘 미사일에 주저앉는 레바논 아파트> 22일(현지시간) 이스라엘군의 미사일 공격으로 레바논 베이루트의 한 아파트 건물이 붕괴되고 있다. 이스라엘군은 공격에 앞서 인근 주민들에게 대피하라고 경고했다. 사상자 여부 등은 알려지지 않았다. 로이터연합뉴스

<이스라엘 미사일에 주저앉는 레바논 아파트> 22일(현지시간) 이스라엘군의 미사일 공격으로 레바논 베이루트의 한 아파트 건물이 붕괴되고 있다. 이스라엘군은 공격에 앞서 인근 주민들에게 대피하라고 경고했다. 사상자 여부 등은 알려지지 않았다. 로이터연합뉴스

연속 컷으로 엮은 사진을 1면에 실었습니다. 어떻게 이 순간을 포착했을까. 순식간에 날아들었을 미사일의 전후 컷을 멀지도 않은 곳에서 어떻게 정확히 담아낼 수 있었을까. 현장에서 사진을 찍은 사진기자가 되어 상황을 짐작해 봅니다. 심장이 요동을 쳤을 테고 손끝은 몹시 떨렸을 테지요. 하지만 정확하게 앵글을 잡고 셔터를 눌렀습니다. 이스라엘이 쏜 미사일이 날아서 아파트에 떨어지고, 먼지를 일으키며 건물이 흔적 없이 사라졌습니다. 문득 이 연속 사진을 멋지고 놀라운 풍경인 듯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뜨끔했습니다. 전쟁사진의 스펙터클이라는 건 그저 비이성과 잔인함일 뿐이지요.

전쟁사진에 무감해졌습니다. 익숙해지자 조금 더 센 것, 더 화끈한 것을 바라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떤 사진이 전쟁을 중단시키는 데 도움이 될까? 그런 사진이 가능할까? 매체의 사진은 이 방면에서 무력하기 그지없어 보입니다.

■10월 25일

<돌담길 따라 정동문화축제 오세요> 경향신문이 주최하는 제26회 정동문화축제가 개막한 24일 시민들이 서울 중구 정동길에서 현대무용 공연을 즐기고 있다. 26일까지 열리는 이번 축제는 대한제국 시절 외교·문화·교육의 중심지였던 경향신문~프란치스코 교육회관~서울시립미술관~덕수궁 대한문으로 이어지는 정동길 일대에서 열린다. 김창길 기자

<돌담길 따라 정동문화축제 오세요> 경향신문이 주최하는 제26회 정동문화축제가 개막한 24일 시민들이 서울 중구 정동길에서 현대무용 공연을 즐기고 있다. 26일까지 열리는 이번 축제는 대한제국 시절 외교·문화·교육의 중심지였던 경향신문~프란치스코 교육회관~서울시립미술관~덕수궁 대한문으로 이어지는 정동길 일대에서 열린다. 김창길 기자

하늘은 청명하고 그 아래 나무들은 오색으로 물들어갑니다. 가을은 축복입니다. 나라 안팎의 참담한 뉴스들이 영혼을 갉아먹는 것 같습니다. 피로감을 더하는 뉴스들이 이 계절을 온전히 누릴 수 없도록 하고,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의 감동도 사그라들게 한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뉴스가 불러오는 이 참담함과 피로와 심란함을 그나마 견디게 하는 게 한강과 가을의 힘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닿습니다. 1면 사진은 경향신문이 주최하는 가을 축제 ‘정동문화축제’ 거리 공연의 모습입니다.

이번 주는 강원 설악의 가을로 시작해 서울 정동길 가을로 마무리합니다. 축복의 계절 온전히 즐기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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