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농담은 슬프다. 나는 ‘나락감지센서’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유쾌하게 웃지 못한다. ‘나락감지센서’는 나락에 떨어질 수 있는 상황을 사전에 감지하고 피하려는 본능적인 능력을 뜻한다. 이 센서를 말하는 사람이 늘어난다는 건 그만큼 우리가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세상에 살고 있다는 뜻. 작은 실수도 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불안감과 실수 이후 회복이 어렵다는 안정감의 부재에 맞선 방어기제로 그 감각이 더 정교해지고 있으나 한편으론 계속 떠오르는 질문을 떨칠 수 없다. 실수가 나락으로 이어지는 사회적 분위기는 얼마나 위험한가. ‘나락’이라 불렀던 실수는 과연 ‘회복할 수 없는 절망’을 감당해야 할 만큼의 실수일까? 이 센서를 꺼버릴 수는 없을까?
실패도 실수도 쉽게 허락되지 않는 시대다. 위험 감수보다 실수 없음이 우선이다. 어떤 플랫폼에서든 ‘실패 없는’을 검색하면 실패를 피할 방법을 제안한다. 실패 없는 레시피, 노후준비, 가성비템까지 실패와 실수로부터 우리를 지켜줄 가이드가 널렸다. 정보가 이렇게 풍성하니 실패는 사치다. 심지어 나를 알아가는 과정에도 가이드가 있다. 유전자 검사로 생활 습관을 컨설팅받고, 자신의 골격을 분석해 스타일링 컨설팅을 받는 게 유행이라고 한다. MBTI보다 더 고차원적 심리검사에 대한 관심도 높다. 모두 유료에 고가다. 실수가 용인되지 않는 시대에 스스로를 더 명확하게 파악해 불확실한 세계를 견디고자 하는 태도는 너무나 공감하지만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에서조차 실수를 두려워하고 ‘외부 분석’에 의존하는 건 사회적으로도 위험한 신호다. ‘실패 없는 레시피’대로, ‘분석 결과’대로 살아가는 건 안전하지만 완전하지 않다. 실수는 없을지언정 경이도 없다. 완전한 나 자신은 내 몸으로 직접 경험한 것들로 완성된다. 우리는 실수를 통해 도약할 수 있다.
네 살 아이가 살고 있는 우리 집은 매일 실수가 벌어지는 실수의 전당이다. 하루에도 몇번이나 실수를 만드는 아이는 자신의 실수에 좌절하는 대신 깔깔 웃는다. 주전자로 컵에 물을 따르다 맘대로 되지 않아도 까르르 웃는다. 컵 밖으로 이리저리 삐져나오는 물을 보며 신이 나 웃는다. 그 실수를 몇번이나 반복하다가 문득 주전자의 높이에 따라 컵에 물을 따르는 속력이 달라진다는 걸 몸으로 배운다. 바라보는 엄마는 닦을 생각에 걱정이 앞서지만, 아이는 우연히 우주의 원리를 발견한 기쁨에 들뜬다. 책으로 읽어줬다면 결코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을 것을 아이는 실수를 통해 더 구체적으로 체험한다. 실수에서 놀이를 찾고 실수로 세계를 배운다.
우리는 실수를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열도록 길러지고 자라왔다는 걸 아이를 통해 새삼 다시 배운다. 실수한 내가 실수하지 않은 나에게 참 많은 것을 가르쳐주며 새로운 세계의 가능성을 열어왔다.
그러니 이 불확실한 사회에서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실수하는 정신이다. 실수를 번역하고 해석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의미를 만드는 아이 같은 마음과 눈빛이 필요하다. 나의 실수를 믿어주고, 타인의 실수를 바라봐주며, 그저 서로의 가능성을 믿어주는 연대감. 그 힘이 있는 사회에서 실수는 결코 나락으로 이어질 수 없다. 이제 나는 스스로를 불필요한 긴장 속으로 몰아넣는 나락감지센서를 끄고, 실수하는 정신을 장착하고 싶다.
물론, 다 자란 성인은 자신이 흘린 물을 스스로 닦아야 한다.
정유라
2015년부터 빅데이터로 라이프스타일과 트렌드를 분석하는 일을 해오고 있다. <넥스트밸류>(공저), <말의 트렌드>(2022)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