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의 문이 닫히고 있다

조경숙 IT 칼럼니스트

정보기술(IT) 업계 사람들이 즐겨 보는 ‘GeekNews’라는 채널이 있다. 해외의 ‘HackerNews’를 모티브로 개설한 것으로, 테크업계 사람들이 관심 있게 볼만한 뉴스, 블로그, 기술 토픽 등을 소개한다. GeekNews에 얼마 전 “당신 회사는 주니어 개발자가 필요해요(Your company needs Junior devs)”라는 제목의 칼럼이 공유됐다. 신입 개발자의 역할은 인공지능(AI)으로 충분히 대체할 수 있다고 믿으며, 고급 개발자로만 팀을 구성하려는 실리콘밸리의 리더를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해당 포스팅의 필자는 신입 개발자를 영입하고 교육하는 일은 팀 내 지식을 순환하게 하고 시니어의 역량 강화를 도우며 동시에 신선하고 창의적인 관점을 도입할 기회라고 강조한다.

그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글 자체보다도 이러한 포스팅이 떠들썩하게 공유되는 분위기 자체가 낯설고 기묘하게 여겨졌다. 불과 몇년 전까지는 이렇게 신입사원의 필요성을 역설하지 않더라도, 신입사원이란 회사가 운영되기 위해 응당 필요한 존재이지 않았던가. IT업계에서 신입 개발자의 존재는 특히 그랬다. 회사마다 신입 개발자를 영입하고자 채용 연계형 인턴, 해커톤, 각종 개발 커뮤니티 행사 등을 경쟁적으로 진행하곤 했다. 그런데 신입 채용 문이 좁아지다 못해, 이제는 신입 채용의 필요성조차 설득해야 한다는 사실이 씁쓸하게 다가왔다.

국내에서도 신입사원 채용 규모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일감이 없는 청년도 늘어나는 추세다. ‘인크루트’에서 발표한 ‘2024 하반기 채용 계획’에 따르면 국내 103개 대기업 가운데 하반기 계획을 확정한 기업은 35.0%로, 지난해에 비해 무려 43.8%나 하락한 수치를 보였다. 특히 대기업들이 정기적으로 진행하던 신입사원 공개채용 제도를 아예 폐지하면서 신입 채용 문은 더욱 좁아졌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청년 장기실업자도 증가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1~8월 구직기간 6개월을 넘긴 실업자 중 30대 청년 비율이 55.7%에 달했다.

IT업계도 다르지 않다. ‘사람인’이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올해 2분기 IT업계 채용공고 가운데 신입 채용공고는 4%에 그쳤다. 반면 경력자에 대한 공고는 52%에 달했다고 한다. 신입사원으로서 청년들이 사회생활을 시작할 수 있는 진입로 자체가 닫히고 있지만, 정작 정부는 ‘디지털 인재 100만명’을 양성하느라 여전히 분주하다. 2022년 윤석열 정부 출범과 함께 발표된 ‘디지털 인재 100만 양성 과정’ 5개년 계획이 한창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국비 지원으로 개발자를 양성하는 K디지털 트레이닝 과정에 AI 개발자 교육 프로그램마저 추가되었지만, 여기 투입되는 국가 예산은 꾸준히 증가하는 반면 본 과정을 수료한 이들의 취업률은 매해 낮아지고 있다. 당초 세운 5개년 계획에 따르자면 앞으로 2026년까지 디지털 인재를 양성해야 하는데, 이들을 대체 어디로 어떻게 취업시킬 작정인가. 이런 상황에서 청년들은 국비 개발자 교육을 수료했더라도 취업 공백기를 메우기 위해 또 다른 교육과정에 들어간다. 마치 ‘회전문 부트캠프’처럼, 교육으로부터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이다.

물론 고용을 늘리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건 안다. 그러나 경력직과 신입의 공고 격차가 어마어마하게 커진 지금의 상황만큼은 정부의 적극적 개입과 조정이 절실하다. 왜 기업들은 신입 채용 문을 닫는가? 이에 대한 국가 차원의 연구도 부족한 실정이다. 이제는 ‘100만 양성’ 같은 허상에서 빠져나와 고용 문화 연구, 취업 연계 프로그램 확대, 신입 채용 기업 지원 등에 집중해야 하지 않을까? 지금 청년들에게 필요한 건 교육이 아니라 고용이다.

조경숙 IT 칼럼니스트

조경숙 IT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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