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노벨 경제학상은 다론 아제모을루, 사이먼 존슨, 제임스 로빈슨 세 사람에게 돌아갔다. 한림원은 선정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왜 어떤 국가는 부유하고 어떤 국가는 가난한지를 설명했다. 중요한 한 가지 설명은 사회제도의 지속적 차이다. 이들은 유럽 식민주의자들이 도입한 다양한 정치경제 시스템을 조사해 제도와 번영 간의 관계를 증명했다.” 나는 이 설명이 불편하다. 수상자들의 연구에서 해당 부분은 중요하긴 하나 논란이 많고 더 주목해야 할 다른 연구들도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저서를 통해 갈수록 제도뿐만 아니라 권력이 중요하다고 보고 권력관계를 바꿔야 진보의 새 길이 열린다는 메시지를 던지는데 한림원 설명에는 이에 대해 아무 언급이 없다.
한림원 설명과 관련, 수상자들의 대표적 논문으로 ‘비교 발전의 식민지적 기원’이 있다. 여기서 이주 식민자들이 어떤 제도를 수립하는지 주목하고 그 제도 차이가 독립 후 소득수준 차이를 낳는 근원이라 본다. 이주민 사망률을 사용해 이주민이 좋은 제도(사유재산권 보호)를 수립하려 했는지 추출적 활동에만 몰두하려 했는지를 계량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한다. 숱한 의문이 있지만 식민지근대화론 쪽에서 이 논문을 반긴다는 사실만 지적하자.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다론 아제모을루, 제임스 로빈슨)에 따르면 포용적 제도와 추출적 제도가 국가 흥망성쇠를 가르는 결정적 제도 차이다. 포용적 경제제도는 확고한 사유재산권을 보장하고 공정한 경쟁 장을 제공하며 다수에 경제적 기회를 개방한다. 추출적 경제제도는 지배엘리트가 다수로부터 자원을 뜯어내고 대중에 경제활동 유인을 제공하지 못한다. 포용적 정치제도는 다원적이면서 적절한 중앙집권성을 갖고 있는 것인데 둘 중 하나라도 없으면 추출적 정치제도로 떨어진다. 경제제도와 정치제도 간에는 시너지 효과가 작용하며 포용적 경제제도와 추출적 정치제도의 결합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포용적·추출적 제도의 개념틀은 대범한 단순성 때문에 매력적이나 위험도 크다. 비교자본주의 정치경제학이 쌓아놓은 자본주의 다양성에 비하면 너무 이분법적이다. 독일, 스웨덴, 일본 등 조정시장경제가 독자적 범주로 나타나지 않는다. 동아시아 발전경험에 대한 설명도 부실하다. 한국, 일본은 영미형 주도 포용제도 국가군에 들어간 반면, 중국은 포용적 경제제도의 길로 들어섰지만 불충분할뿐더러 정치제도가 추출적이라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더 일반적으로 이 책에는 경쟁만 있지 협력이란 개념 자체가 아예 없다. 단순 이분법은 중국이라는 난제를 풀지 못했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진영론적 이데올로기가 스며 있다고 비판받을 여지도 있다.
수상자들은 이제 권력구조(정치적, 경제적)를 재편해야 모두를 위한 번영의 길이 열린다는 새로운 이야기를 하게 된다. <좁은 회랑>(제임스 로빈슨)에서는 국가권력과 사회권력, 국가역량과 사회역량 간 경주(레드 퀸)에 대해 말하고 상호 협력시너지를 내는 발전공간을 그린다. 핵심개념은 ‘족쇄 찬 리바이어던’이다. 이는 폭력의 억제, 법의 집행, 공공서비스 제공 등 제 역할을 하며 견제받는 강한 국가다. 저자들은 하이에크를 비판하는 데 강한 국가에 위험이 따름은 인정한다. 이를 감시, 견제하면서 시너지를 내는 대항력으로서 강한 사회가 요구된다. 미국, 영국과 함께 스웨덴이 좁은 회랑의 길을 대표한다. 한국은 사회가 강화되고 세계화 효과를 잘 활용해 좁은 회랑 안으로 들어간 반면, 중국은 전제적 리바이어던 아래 사회가 약해 회랑에 들어가기 어렵다고 비판된다. 그런데 스웨덴과 한국 둘 다 좁은 회랑에 들어갔다면 이 회랑 개념에 모종의 빈구석이 있지 않을까.
<권력과 진보>(다론 아제모을루, 사이먼 존슨)는 수상자들의 현 단계 생각을 가장 잘 알려준다. 바야흐로 인공지능시대가 도래했지만 저자들은 AI 환상을 정면 비판한다. AI기술로 현대판 파놉티콘이 도래할 수 있다. 어찌해야 할까. 대항권력을 세우고 기술변화 경로를 바꾸어야 한다. 노동자의 조직화, 시민사회 조직의 공익적 행동이 가장 중요하다. 구체적 정책으로는 사회적으로 유익한 기술에 유인 제공, 빅테크기업 분할, 자동화를 통제하는 조세개혁, 노동자에 대한 투자, 프라이버시 보호와 데이터에 대한 사용자 소유권, 부유세, 재분배와 사회안전망 강화(기본소득이 아니라) 등이다.
재산권 보호 이야기는 흔적도 찾기 어렵다. 놀랍게도 과거 영국 인클로저 과정을 비판하고 커먼즈를 유지하면서 신기술을 도입하는 역사의 다른 길이 가능했다고 말한다. 거의 폴라니를 연상시킨다. 이들의 생각은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로부터 확연히 변했다. 깨어 있는 시민은 노벨 경제학을 바로 읽어야 하는데 <권력과 진보>부터 읽는 것도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