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5일 임기가 이틀 남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검사 4명의 연임안을 재가하기 직전까지도 공수처에서는 출범 이후 처음으로 검사 연임이 불발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무성했다. ‘윤 대통령이 해병대 채모 상병 사망사건 수사 외압 의혹 수사를 이끌어 온 이대환·차정현 부장검사를 연임시키지 않을 빌미를 찾고 있다’는 설이 돌았다. 윤 대통령이 찾고 있다는 ‘빌미’의 구체적인 내용까지 공수처 주변에서 흘러나왔다.
검사 연임 결정이 미뤄지는 동안 공수처는 큰 혼란을 겪었다. 공수처 관계자들은 연임 지연과 연이은 검사 사직 탓에 “수사팀이 수사에 손을 못 대고 있다”면서 혼란스러운 분위기를 전했다. 연임안이 재가되지 않는다면 채 상병 사건, 김건희 여사 공천개입 의혹 등 공수처가 맡은 굵직한 현 정부 관련 수사가 한동안 좌초할 위기였기 때문이다. 야당뿐 아니라 여당이 추천한 위원들도 포함된 공수처 인사위원회가 만장일치로 검사 4명의 연임을 의결했는데도 윤 대통령은 시간을 끌면서 사실상 여야 합의조차 무시했다.
더 큰 문제는 공수처 인사 지연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이다. 윤 대통령은 오동운 공수처장을 지명할 때도 후보추천위원회의 추천 이후 석달가량 시간을 끌었다. 이 때문에 가뜩이나 수사 인력이 부족한 공수처는 수사를 해야 할 부장검사 2명이 처장과 차장까지 대행하는 기형적 상황을 장기간 겪어야 했다. 공수처에선 오 처장 본인도 인사 문제로 취임 지체를 경험했음에도 “연임 절차가 순조롭게 진행될 것으로 확신한다”는 낙관론으로 일관한 데 대한 비판도 나왔다.
윤 대통령이 막판에 검사 연임안을 재가하면서 급한 불은 껐지만 공수처는 깊은 상처를 입었다. 고위공직자의 권력형 범죄 수사를 위해 만들어진 공수처가 검사 연임 결정이 내려지는 3년마다 최고위 공직자인 대통령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불안정한 지위에 있다는 현실이 여실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공수처가 ‘대통령 지휘를 받지 않는 독립기관’이라는 출범 취지를 지키려면 인사 문제부터 대통령에게서 독립해야 한다. 공수처 인사위는 연임 추천 시 부적격 사유를 구체적으로 따지도록 해놓고, 대통령은 아무런 이유가 없어도 연임을 승인하지 않을 수 있도록 한 관계 법령부터 개정해야 한다. 살아 있는 권력을 수사하라 해놓고 인사 시기마다 ‘피고발인’ 지위인 대통령 눈치만 볼 수는 없는 일이다.
당장 신임 부장검사 1명과 평검사 2명에 대한 임명안 재가도 한 달 넘도록 감감무소식이다.
이대로면 오는 31일자로 공수처는 전체 검사 정원(25명)의 40%인 10명이 공석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