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조로 한 걸음 내딛는 일

심완선 SF평론가

지난여름엔 CCTV 영상을 잔뜩 구경했다. 국가교통정보센터에서 제공하는 보령해저터널 근방 CCTV 화면에 새호리기가 등장한 덕분이었다. 어쩌다 그쪽에 둥지를 틀었는지, 누구든 접속하기만 하면 새호리기가 파닥거리고 갸웃거리는 장면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었다. 새호리기는 이름대로 눈을 홀릴 정도로 현란하게 비행하고, 성체는 30㎝가 넘는다고 한다. 그러나 카메라 앞에 다소곳이 앉은 새는 그저 주먹만 하고 복실복실한 생물로 보였다. 매과에 속하는 조류답게 색상이 화려하지는 않아도 몸이 날렵한 곡선을 그리는 것이 몹시 멋지고 귀여웠다.

새호리기가 두 마리 나타났을 때는 각각 ‘태안이’와 ‘보령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CCTV 화면을 기준으로 왼쪽이 태안이, 오른쪽이 보령이였다. 카메라가 비추는 도로의 왼쪽이 태안 방향, 오른쪽이 보령 방향이기 때문이다. 방향을 가리키는 화살표가 마치 새들의 이름을 알려주는 것처럼 보였다. 얘들 덕분에 나도 새를 구경하는 ‘탐조’에 발을 걸쳤다.

도시에 사는 내가 직접 본 새는 몇 없다. 참새, 비둘기, 까치, 까마귀, 왜가리, 청둥오리, 박새. 그나마도 정확한 명칭은 모른다. 이외엔 알아보질 못하니 모두 잊어버렸다. 새호리기의 이름도 모습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더군다나 새호리기는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된 상태다. 주로 산림에 서식하는 새이기에 골프장을 세우거나 산을 개간할 때마다 새호리기가 살 곳은 사라진다. 나는 인간이 멸종시킨 조류가 1500여종으로 추정된다는 소식을 보았다. 앞으로 몇백년 사이에 700종이 더 사라진다고 한다. 탐조 취미를 지닌 작가분이 예전에 새들의 멸종이 정말 어마어마하게 느껴진다는 이야기를 했다. 새들이 그저 숫자가 아니라 새호리기처럼 이름과 모습을 지닌 존재라고 생각하면, 그 어마어마함이 구체적으로 다가온다.

탐조에 익숙해지면 점점 새를 잘 식별할 수 있고, 그러면 탐조를 더욱 사랑하게 된다고 한다. 내게 새들의 이름과 모습을 가장 많이 알려준 것은 ‘윙스팬’이라는 보드게임이었다. 플레이어는 각자 야생동물 보호구역을 운영한다. 자신의 구역에 여러 조류를 끌어들여 점수를 얻는 것이 목표다. 플레이어는 조건에 맞게 카드를 내려놓아 새를 배치할 수 있다. 카드에는 새의 이름, 모습, 습성과 더불어 정보와 서식지가 표시되어 있다. 예를 들어 윙스팬의 타이틀을 장식하는 제비꼬리딱새는 초원에 서식하고 날개폭(wingspan)이 38㎝이며, 과일과 무척추동물을 먹이로 삼고 사발형의 둥지를 짓는다.

나의 구역에 놓인 새들은 조력하거나 잡아먹거나 하면서 작은 생태계를 이룬다. 기본 게임은 북미지역 조류를 다루지만 유럽, 오세아니아, 아시아 등의 확장판을 더하면 종류가 훌쩍 늘어난다. 현재 윙스팬 위키에 등록된 카드는 새와 인간을 합쳐 446장에 달한다. 만약 디지털 게임으로 출시된 윙스팬을 플레이하면… 심지어 카드에 그려진 새들이 움직인다! 울음소리도 들을 수 있다.

탐조인들은 처음 탐조에 발을 들이는 사람들에게 무리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멀리 나갈 필요 없이 서식지를 검색해서 주변에 사는 새부터 찾아보라고 한다. 그렇다면 그림과 영상으로나마 새들의 이름과 모습을 익히는 일도, 탐조로 한 걸음 내딛는 것이지 않을까.

심완선 SF평론가

심완선 SF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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