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포크라테스와 버즘나무

이선 한국전통문화대 명예교수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이 명언은 어느 철학자나 예술가가 한 말로 흔히 생각하기 쉽지만,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가 한 말이다. 원문장의 뜻은 “인생은 짧고, 의술(의 숙련)은 오래 걸려(Vita brevis, ars longa), 기회는 덧없이 사라지고 경험은 불확실하니 판단키 어렵구나”이다. 라틴어 ‘ars’는 지금의 예술(arts)이 아니라, 의술 또는 기술 정도로 해석한다. 의술에 대한 그의 열정과 고뇌, 그리고 근면 성실의 자세를 엿볼 수 있는 구절이다. 의사로서의 주요 덕목인 윤리와 철학을 강조한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의술의 근본이 손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가슴에 있다는 것으로 이해할 만하다.

수많은 환자의 임상 데이터를 기반으로 원인과 결과에 따른 대안을 제시했던 그는 의학을 종교로부터 분리한 혁신적 인물이기도 하다. 질병의 원인을 미신이나 초자연적인 것에서 찾던 당시 추세와는 달리, 그는 질병은 신이 내린 벌이 아니라 자연발생적이라고 주장했다. “사람들의 건강에 대해 알고 싶으면, 그들이 호흡하는 공기와 마시는 물, 그리고 사는 곳을 살펴보라” 한 그의 말이 이를 뒷받침한다. 즉, 환경이 질병의 원인이 된다는 것이니, 그의 말은 지금까지도 유효하다.

그가 태어났고 오랫동안 활동했던 그리스 코스섬에는 일명 ‘히포크라테스 버즘나무’가 자라고 있다. 이 버즘나무 아래에서 그가 학생들에게 의학을 가르쳤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마치 공자가 살구나무 아래에서 제자들을 가르친 행단(杏壇)의 일화와 닮아 있다.

그리스 군인이 트로이 침공 전에 의식을 거행했던 장소도, 또 플라톤이 아테네 학당에서 강의했던 곳도 버즘나무 아래였다니, 버즘나무는 그리스인들에게 신성한 나무였다. 또한 버즘나무는 ‘삶의 기쁨과 회복력’을 상징한다. 도심 공해에도 강하고 가지나 줄기를 잘라도 금세 다시 자라나는 생명력 강한 버즘나무의 생태가 그대로 반영된 것이다. 지금도 마을 행사나 축제가 중앙 광장의 버즘나무 아래에서 열리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규모와 생태, 표상으로 보아 버즘나무는 그리스인들에게 생명력 넘치고 모든 것을 포용하는 어머니 품과 같은 존재였다.

지금 우리 사회 전체가 의료대란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히포크라테스와 학생들이 치열하게 토론했던 광장의 버즘나무. 그 버즘나무의 상징처럼, 이 사태가 하루속히 회복되어 우리 모두 삶의 기쁨을 누릴 수 있게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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