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29일 국무회의에서 “지방자치제도를 더 발전시켜서 삶의 질을 개선하고 균형 발전을 이뤄내야 한다”고 말했다. ‘지방자치의 날’을 알리며, “지역균형발전과 살기 좋은 지방시대를 여는 것이 국정 운영의 핵심 기조”라고 한 것이다.
참으로 어이가 없다. ‘30조원 세수 결손’을 메우기 위해 기획재정부가 지방교부세·교부금 6조5000억원을 감액하겠다고 한 게 바로 하루 전 일이다. 도대체 국민은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하나. 윤 대통령은 “중앙정부는 지방정부의 성공을 뒷받침하는 든든한 조력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도 했다. 세수 결손으로 재정 건전성 문제가 발등의 불로 떨어지자 전날 지방 예산을 대대적으로 깎겠다고 발표해놓고, 하루 뒤 언제 그랬냐는 듯이 ‘지방시대’ ‘든든한 조력자’ 운운하니 이런 코미디가 없다.
윤 대통령은 이날 “권한과 책임의 무게 중심을 더 과감하게 지방정부로 옮기겠다”며 중앙정부가 일방적으로 결정하고 분배해 주는 시대는 지나갔다는 말도 덧붙였다. 맞는 방향이다. 그러나 소득세나 부가가치세 등을 중앙정부 몫으로 유지한 채, 사전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지방 예산을 삭감하면서 할 소리는 아니다. 진정으로 지방에 권한과 책임을 이양할 의지가 있다면 국세와 지방세의 세목 조정 같은 재정분권 방안을 함께 제시해야 한다.
이날 국무회의에서는 입학지원금 등 현금성 복지 지출이 많은 시도교육청에 교육부가 교부금을 삭감할 수 있도록 한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 시행령 개정안’이 심의·의결됐다. 권한과 책임을 지방에 넘기겠다는 윤 대통령 발언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말 따로 행동 따로다. 최상목·이주호 부총리와 대통령실 참모들은 뭐하는가. 세간에는 김건희 여사가 국정을 챙기지 않아 이렇게 됐다는 비아냥까지 나오고 있다.
지방예산 삭감으로 당장 일선 초중고 교육이 풍전등화 신세다. 전국 시도교육감들은 진보·보수 막론하고 교육재정 위기를 우려하고 있다. 고교무상교육 국비 지원이 중단된다는 얘기가 돌고, 교원채용 중단까지 검토하는 교육청도 있다고 한다.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방자치단체는 이미 지난해 지방교부세 삭감으로 홍역을 치렀다.
지방예산 삭감 시 국회 심의가 필요하다. 윤 대통령은 부자 감세와 경기 예측 실패로 인한 세수 결손의 책임을 지방정부에 떠넘기지 말아야 한다. 국회는 지방재정 불안정이 서민의 삶과 미래세대 교육을 위협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기 바란다. 현재로선 국가재정법에서 규정한 것처럼 추경을 편성해 국회의 심의·확정을 거친 후 집행하는 것이 바른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