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비공개로 법률 자문
로펌 “법 개정 없인 불가”
“중앙은행 ‘비상금’ 손대나”
정부 무리수에 국회 질타
기획재정부가 지난해 세수 결손이 예상되자 한국은행이 금융·통화 정책 안정성 확보를 위해 쌓아둔 법정 적립금을 끌어다 쓸 수 있는지에 대한 법률 자문을 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법률 자문에 응한 로펌은 기재부가 한은 적립금을 세수 결손에 끌어 쓰려면 “한국은행법을 개정해야 한다”며 불가하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기재부가 국회 심의를 안 거치고 세수 결손에 대응하려다 한은 적립금까지 손대는 무리수를 두려 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실무부서에서 그렇게 했던 것 같다”고 했다.
경향신문은 29일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의원으로부터 법무법인 태평양이 지난해 4월 기재부에 낸 ‘한국은행 적립금의 세입 납부 가능 여부’ 자문 답변서를 확보했다.
기재부는 지난해 4월21일 법무법인 태평양에 한은 적립금을 정부 세입으로 끌어다 써도 되는지를 묻는 내용의 문서를 비공개로 보냈다.
기재부는 공문에서 “일각에서 최근 경제상황을 고려, 20조원이 넘는 한은 적립금 일부를 정부 세입으로 납부해 국민 부담을 낮추자는 의견이 제기됐다”며 배경을 밝혔다. 지난해 4월13일 기재부가 발표한 실질적인 나라살림(관리재정수지) 적자는 1~2월 31조원에 달했다.
태평양은 기재부에 보낸 ‘불가’ 답변서에서 “적립금은 한은의 손실보전에 사용돼야 하고, 정부 세입 납부 등 다른 용도로 처분할 근거는 찾아보기 어렵다”며 “정부 세입으로 납부하기 위해서는 적립금의 처분에 관한 한국은행법을 개정해 법령상 근거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한은 적립금은 위기 상황에 대비한 전용 비상금이다. 한은은 매년 순이익의 30%를 적립금으로 쌓아야 한다. 적립금은 기재부가 ‘마이너스통장’으로 쓰는 한은 일시 대출금과는 다르다. 일시 대출금은 정부가 끌어다 쓸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있지만, 적립금은 그렇지 않다.
한은은 경기침체기에는 시중에 유동성을 공급해 경기를 부양하고, 경기과열기에는 물가 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유동성을 회수한다. 한은 적립금이 없으면 이러한 중앙은행의 기능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
지난해 말 기준 한은 적립금은 총자산의 3.8%(약 21조원)다. 같은 기간 스위스 중앙은행의 총자산 대비 적립금 비율은 7.9%, 홍콩은 21.8%, 대만은 6.7%였다. 한은에서는 적정한 적립금 규모를 총자산의 5%(약 27조원) 수준으로 보고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민주당 의원들이 코로나19 대유행 기간이던 2021년 한은 적립금을 세입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법을 발의해 정부도 현행법상 가능한지 알아보려고 했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에 진 의원은 “2021년 법안이 발의된 직후 자문을 했다면 모를까, 2년 뒤에 법률 자문을 하나”라고 재반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