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죽음의 땅인가? 머나먼 타국에 부푼 희망을 안고 찾아온 이주노동자들의 자살이 늘고 있다. 2020년 이후 고용노동부가 파악한 현재까지의 이주노동자 자살자 수는 산업재해로 사망한 수 36명과 거의 유사한 32명이다. 네팔 11명, 스리랑카 7명이고 최근 캄보디아 노동자 자살이 늘어 캄보디아 이주자들에게 큰 슬픔이 되고 있다고 한다. 파악이 안 되는 죽음도 많아 이주노동자 건강 관련 활동가들은 자살이 더 많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주노동자의 자살을 주제로 10월16일 국회에서 개최된 심포지엄에 참석했다. 한국이주민건강협회(위프렌즈, 대표 김성수 성공회 전 주교)와 서미화 의원실이 공동 마련한 자리다. 네팔, 캄보디아, 스리랑카 노동자들이 주로 참석했고 일부 국가의 대사관에서도 나왔다. 자살한 이주노동자들의 동료나 활동가들이 자신의 경험과 목격을 증언하는 자리였다.
내내 마음이 아프고 부끄러웠다. 동료의 자살상황을 전하는 이주노동자들의 마음에 원망이 가득했다. 자살한 동료들이 남긴 유서나 죽기 전 마지막 발언 등을 살펴보면 대다수 사례에서 한국인 직장 상사들의 괴롭힘과 차별, 폭력적 태도, 수치심과 모멸감을 주는 행위가 발견됐다. 이들은 마치 어떻게 괴롭히면 심리적으로 큰 상처와 정신적 후유증을 남길 수 있는지를 잘 아는 고문기술자처럼 행동했다고 한다. 한 사람의 이주노동자가 죽음에 내몰릴 정도로 고통스럽게 괴롭히는 방식이 있었던 것이다. 군대에서의 혹독한 훈련방식이나 심할 경우 독재정부의 고문방식과도 큰 차이가 없어 보였다. 증언을 정리해 보면 다음 5가지 요소들이 반복되었다.
첫째, 인종과 나라에 대한 ‘차별적 발언’을 지속했다고 한다. 비난, 조롱과 함께 반복적으로 차별을 받아들이도록 했다고 한다. 둘째, ‘빨리빨리’라는 명령과 함께 계속 들들 볶고, 반복적으로 재촉해 심리적으로 초조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이주노동자들에게 ‘빨리빨리’는 심리적 고통을 대표하는 가장 상징적인 용어였다. 채찍질하듯이 빨리 하라고 하고, 주어진 시간 안에 못하면 모두 무효처리할 것처럼 겁박해 숨도 못 쉬게 몰아갔다고 한다. ‘빨리빨리’ 하라는 한국인 상사의 명령은 이주노동자들의 악몽 속에도 자주 등장한다고 한다. 셋째, 말끝마다 ‘욕설’을 했다고 한다. X새끼, Y새끼를 내뱉으며, 항상 욕설을 퍼부어 귀가 아플 지경이었다고 한다. 너무나도 많은 욕을 들은 나머지 이주노동자들은 혼자 있을 때에도 욕이 되뇌어졌다고 한다. 넷째, ‘똑바로, 제대로’ 하라고 하면서 사사건건 트집을 잡았다고 한다. 일에 대한 잔소리가 너무 많고, 구박과 핀잔을 주고, 혼을 너무 많이 내서 일에 대한 자신감이 생기기가 좀처럼 쉽지 않았다고 한다. 한국사람들은 정말 혼내기를 즐기는 사람들이라는 생각도 든다고 한다. 다섯째, ‘임금체불’을 밥먹듯이 했다고 한다. 제때 임금을 주지 않고 체불, 지연하는 경우도 많고, 회사가 도산하는 경우, 임금을 받지 못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주노동자도 인간임을 알아달라는 스리랑카 노동자의 조용한 절규가 참석자들을 울리고 청중 중 어떤 분은 한국인이 1970년 전태일 열사를 기리는 민족임을 상기시켰다. 왜 이렇게 이주노동자를 존중하지 못하는 사회가 되었을까? 타인과 약자를 괴롭히는 일을 멈추지 못할까? 우리 스스로도 우리를 괴롭히고, 또 많은 괴롭힘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우리 사회가 자살률이 높은 여러 이유 중 하나는 이런 방식의 괴롭힘이 사회 곳곳에서 멈추지 않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존중하고 타인도 존중하며 돌보는 사회로 큰 방향을 바꾸어야만 자살률 최고의 국가에서 벗어날 수 있을 테다. 누구에게나 ‘빨리빨리’라고 하면서 죽음을 재촉하는 사회에서 ‘괜찮아 괜찮아’를 말해주면서 생명을 살리는 사회로 바뀌는 대전환이 오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