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혼남녀 100명 모여 ‘설렘, 인 한강’
다음 달 23일, 한강 세빛섬서 소개팅
‘서울팅’ 비판으로 무산된 지 1년여 만
서울시가 다시 한번 미혼남녀의 만남을 추진한다. 다음 달 한강 세빛섬에서 열리는 ‘설렘 인(in) 한강’이다. 저출생 문제의 본질을 짚어내지 못했다는 비판에 ‘청년만남, 서울팅’이 무산된 지 1년만이다.
양육에 친화적이지 않은 노동환경과 치솟는 집값 등 청년들이 결혼과 출산의 문턱으로 생각하는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지자체가 비슷한 미혼남녀 소개팅 사업을 변형해 들고 오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돌봄학교지원팀’이 담당인 이유?
설렘 인 한강은 서울 거주 25~39세(1999~1985년 출생자) 미혼남녀가 지원 대상이다. 남녀 각각 50명씩 100명이 정원이며, 대상자들은 다음달 23일 반포한강공원 세빛섬에서 한강 요트 투어 및 레크리에이션, 1:1 대화 등 소개팅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참석자들은 프로그램 마지막에 마음에 드는 이성을 1~3순위까지 적어내고, 주최 측이 이를 기준으로 매칭한 뒤 다음날 커플 성사 여부를 개별 통보한다. 커플이 된 이들에게는 총액 1000만원 한도에서 데이트권을 제공한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1월 신년 기자회견에서 “서울팅이나 그와 유사한 형태의 시도가 다시 될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별로 없다”고 밝혔지만 10개월만에 계획이 뒤집힌 것이다.
서울시는 이번 행사가 ‘서울팅’과 다르다고 말했다. 서울팅이 시 예산 8000만원을 사용하려 했던 것과 달리 설렘 인 한강은 우리카드가 전액 후원한다. 공식적인 시의 저출생 대책도 아니라고 했다.
서울시 행사가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 지원서 검토를 비롯해 보도자료를 이용한 홍보를 서울시 공무원들이 담당했기 때문이다. 이번 행사는 서울시 여성가족실 산하 저출생담당관에 속한 ‘늘봄학교지원팀’이 담당했다. 팀 성격과 업무가 어울리지는 않는다.
서울시 관계자는 “설렘 인 한강이 예산 사업 즉 정규 업무가 아닌 갑자기 생긴 업무이다보니, 저출생담당관 하에서 조금 여유가 되는 팀이 담당하게 됐다”고 말했다.
미혼 남녀 소개팅 사업이 지자체의 본 업무라고 보기 어렵기 때문에 타 지자체에서도 다양한 과에서 사업을 담당한다. 다만 과 이름에 여성 혹은 아동이 포함된 부서에서 이들 업무를 맡는 경우가 많다. 강원 삼척에서는 여성친화팀, 울산과 서울 노원 등에서도 여성가족과에서 해당 업무를 맡았다.
양이현경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는 달라진 것이 없는 소개팅 행사를 다시 들고 온 것은 문제라고 했다. 그는 “저출생은 교육과 노동, 사회 구조의 문제 등이 맞물려 일어나는 사회 현상”이라며 “총체적으로 사회 문화를 바꿔야 하는 상황인데, 이를 위한 업무를 ‘여성’ 관련과 아래 두고 문제를 해결하려다 보니 단기적인 대책들만 나온다”라고 말했다.
청년 인구 블랙홀 ‘서울’도 소개팅
지자체가 미혼남녀의 만남을 주선하며 내놓는 이유 중 하나는 요즘 청년들이 자연스럽게 만남의 기회를 얻지 못한다는 데 있다. 청년 인구가 급격히 줄고 있는 지역에서는 유효한 대답일 수 있지만, 서울도 그렇다고 보긴 어렵다.
주민등록 인구통계상 지난달 기준 전국 19~34세 청년 인구는 전국 992만 5849명이다. 이 중 약 5분의 1인 219만4577명이 서울에 거주한다. 거주지가 아닌 직장이나 학교를 서울에 둔 청년 등 생활 반경을 기준으로 하면, 숫자는 더 커진다.
관에서 소개팅 참가자의 신원을 보증한다는 것도 지자체들이 드는 미혼남녀 소개팅의 이유다. 설렘 인 한강 지원자도 주민등록등본, 직장인의 경우 재직증명서, 사업자는 사업자등록증명원, 프리랜서는 소득금액증명서를 내야 한다.
주로 경제적 여건을 주로 확인하기 때문에, 사기업이 적은 도시에서는 공무원이나 공기업 직원 등으로 대상을 한정하기도 한다. 30대 여성 이모씨는 “중소기업이나 단기 계약직으로 근무하면 지원서를 써볼 엄두도 안 날 것 같다”며 “일정 기준에 도달해야 결혼할 수 있다는 인상을 주는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지난 21일부터 접수를 시작한 설렘 인 한강은 3일만에 지원자 500여명을 넘겼다. 행사 준비가 거의 완료된 상태라 서울팅처럼 무산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다만, 청년인구의 블랙홀이라 불리는 서울에서도 자연스러운 만남이 어렵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지 정확히 들여다보는 일이 필요한데도 이벤트 성격이 짙은 소개팅에 서울시의 공력을 쓰는 것은 아쉽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연애가 곧 결혼, 출산이라는 전통적인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결과가 지자체 만남 주선 사업”이라며 “지자체들이 정말 이런 사업이 하고 싶다면, 바우처 사업으로 정례화해서 민간 업체에 맡기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