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기관인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베니스 비엔날레 미술전이 열릴 때마다 한국관 취재기자단을 선발한다. 다수의 기자를 추첨 방식으로 뽑아 왕복 항공료와 숙박에 필요한 경비를 세금으로 전액 지원한다. 이에 비평계 일각에선 비평가들도 해당 프로그램의 지원을 받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내비친다.
개인적으론 반대다. 말이 좋아 지원이지, 총 3건의 기사를 필수로 작성해야 한다는 등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조건도 탐탁지 않은 데다 대체로 홍보를 목적으로 하기에 객관적이며 심층적인 평가와 개선점 파악을 우선하는 비평의 직무와도 맞지 않기 때문이다. 진실한 문화적·예술적 기록 면에서도 주고받음이 정해진 지원은 안 받느니만 못하다.
문화예술 정책을 설계·실행하는 문체부와 공공기관들을 향한 비평가들의 주문은 단지 지원 수준에서 논의되지 않는다. 건강한 비평 생태계 구축을 위한 기초이면서 활동의 지속성을 담보할 수 있는 제안이 주를 이룬다. 그리고 그중 하나가 ‘표준계약서’다.
미술비평은 표준계약서가 없다. 2022년 2월18일 문체부 고시에 따른 미술 분야 표준계약서에는 전시 및 판매위탁계약서를 비롯해, 작가 전속계약서, 소장자와 화랑 등을 대상으로 한 판매위탁계약서 등 모두 12종이 마련되어 있으나, 비평은 예외다.
물론 표준계약서가 반드시 그 사용의 의무를 가리키는 건 아니다. 양식 그대로 써야 한다는 강제성도 없다. 계약당사자의 여건이나 내용과 성격 등을 고려, 수정·변형하여 활용할 수 있다. 그렇더라도 정부가 추구해온 공정한 계약 문화 조성과 비평가 권익 향상을 위한다면 해당 분야의 주요 축인 비평을 빠뜨려서는 안 된다. 비평가도 미술계 종사자다.
또 하나는 저작권이다. 저작권은 저작자가 자신이 만든 작품에 대한 배타적·독자적 권리를 가지도록 하여, 그 작품을 무단으로 복제, 배포, 전시, 판매 또는 2차적 저작물로 활용하지 못하게 보호하는 법적 권한이다. 그런데 미술비평은 해당되지 않는다.
비평 역시 저작권법에 따른 창작물이지만 미술현장에선 작성 시점과 상관없이 비평가의 글을 몇 번이고 편집해 재사용하는 일이 흔하다. 비평가의 허락을 받지 않은 채 온·오프라인에 배포되는 경우도 다반사다. 관계부처의 무관심과 미술계 구성원들의 인식 부족으로 비평 저작권은 현재 실종 상태다.
비평가들이 가장 문제시하는 부분은 공공기관의 비현실적인 원고료다. 100억원을 넘나드는 예산을 들여 전시를 치르면서도 비평가들에겐 고작 30만원의 평론비를 지급하겠다는 광주 비엔날레나, 민간 영역에서 지급하는 통상 원고료의 20%에서 30% 정도를 책정하는 국공립미술관들의 행태는 사실상 ‘착취’에 가깝다. 최근 25만원을 제시한 충주문화관광재단을 포함한 지역 문화재단의 비평료 또한 도긴개긴이다. 하나같이 지식 노동을 기관의 권위와 헐값에 교환하면서도 자성은 없다.
미술계는 비평계 붕괴와 비평의 종말을 우려한다. 비평 본연의 구실도 못하는 글을 생산하며 현안에 대해 어떤 해법도 내놓지 않는 비평계의 자각 부족, 위기 타개를 위한 연대의식의 빈곤 등도 원인이지만, 공무원의 시각에서 현실과 동떨어진 정책을 만들고 터무니없는 규정을 앞세워 집행해온 공공기관의 책임이 무엇보다 크다. 비평의 활용방안을 고민하고, 적절한 기준 마련을 통한 현장 지침을 필요로 하는 상황이 숱하게 벌어지고 있음에도 기본적인 것에조차 무심한 문체부 탓에 비평계의 붕괴가 가속화되고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