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절 때리는 시늉만 해도 ‘얼핏 보면 진돗개’ 나비가 달려듭니다. 순둥이 주제에 말도 못하니, 안절부절못합니다. 나름 귀여워서 ‘아야, 아야’ 해가며 놀려대는데, 제가 가해자 역할을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큰누나 때리는 시늉에 제 손을 차마 물지는 못해서 앙앙 씹어 말리기 바쁘고, 무릎이 아파 혼자 토닥거리기만 해도 머리를 밀어 넣고, 병아리 소리를 냅니다. 나비는 어느 편을 드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손을 들어 뭔가를 때린다는 게 너무 무섭고 싫은 모양입니다. 편을 가르지 않아 기특합니다.
‘그날이 오며는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이’ 왔습니다. 한강물 대신 소설가 한강이 용솟음쳤습니다. 지난 10일,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발표되었습니다. 속보 자막을 본 순간, ‘지금 뭘 본 거지?’ 싶어 눈을 비볐습니다. 자랑스러워 가슴이 벅찼습니다. 이내 화면엔 소설 <소년이 온다> 표지가 오래 비쳤고, ‘저거 광주 이야기던데, 전두환 좋아하는 사람들 배 아파 큰일 났네’ 하는 생각에 비죽이 웃었습니다. 쌤통이다 싶었는데, 배만 아프고 말 그들이 아니더군요. 역사왜곡, 문학위선이라 주장하며 한강 작가의 소설을 헐뜯고, 출판사 로비, 파시즘 운운하며 노벨상 권위를 폄훼합니다. 급기야 일부 보수단체는 스웨덴 대사관 앞에서 규탄시위를 이어가는 모양입니다. 우리집 개도 ‘네 편 내 편’이 없건만, 그들에겐 글보다, 글쓴이의 진영이 더 중요해 보입니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탓에, 그 편가름의 천박함이 도를 넘습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눈에 띄게 변한 게 “부자 되세요”란 인사말 아닐까 생각합니다. 속내야 어떻든, 돈 많이 벌고 싶다는 말을 포부 삼아 입 밖에 꺼내기엔 부끄럽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누군가의 개업식에 대고, 돈 많이 벌고 부자 되라는 말을 덕담 삼아 건네는 건 실례가 되는, 지금보다 조금은 꼿꼿하던 시절입니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의 한파는 우리에게서 부끄러움을 앗아갔고, “부자 되세요”는 카드회사의 새해인사가 되더니, 이내 대통령의 일성이 되었습니다. 부끄러움이 없으니 천박해졌고, 이젠 어느 개업식에서나 ‘돈 세다 잠드소서’ 리본을 봐야 합니다. 그 IMF가 연구보고서 ‘소프트파워의 측정: 새 글로벌 인덱스’를 발표했습니다. 소프트파워는 군사력, 경제력으로 측정되는 하드파워와 달리, 문화와 지식에 기반한 영향력을 의미합니다.
대한민국의 압도적 1위. 우리는 문화 영향력이 전 세계 1위인 나라에 살고 있습니다. 한국 소설가는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고, 한국 뮤지션이 만든 노래는 세계가 따라 부르는 등 한국 예술인이 만든 콘텐츠에 전 세계가 열광합니다. “오직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 남에게도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김구 선생님의 ‘나의 소원’ 한 구절입니다. 선생님은 우리가 문화의 근원이 되고 모범이 되어 세계의 평화가 우리로 말미암을 것을 소원하셨습니다. 머지않아 보이니, 이제라도 슬슬 부끄러움을 되찾고 천박함도 조금씩 벗겨내둬야 우리도 체면이 서겠습니다. 글 쓴 사람, 노래 만든 사람이 어느 쪽 사람인가 편가르기보다는, 이쪽 저쪽 할 것 없이, 기왕이면 햇빛이 있는 데로, 꽃핀 쪽으로 걸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