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의 일이다. 집에 가는 길에 문득 혼잣말이 튀어나왔다. “블로그를 개설해야겠어!” 나지막한 음성이었지만 결의로 가득 차 있었다. 그때 그 길이 오르막길이어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비탈진 길을 걸을 때면 온몸에 힘이 들어가니까. 그 힘이 간혹 난데없는 결심을 싹 틔우기도 하니까. 내가 살던 집은 언덕에 있었다. 일명 고시촌이라 불리던 곳이었다. 위로 올라갈수록 보증금과 월세가 조금씩 내려가던 길이었다. 안온해 보였지만 속을 까뒤집어보면 치열함으로 들끓는 곳이었다. 하루에도 몇번씩 그 길을 오르면서 나는 언젠가는 내려갈 수 있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블로그를 미래의 새로운 둥지로 여겼던 것일까. 집에 오자마자 그 결심을 곧장 실행으로 옮겼다. 2004년 5월18일이었다. 당시에 블로그를 설명하는 글에 나는 이렇게 적어두었다. “나는 나의 모티프를 쥐고 있어요.” 이는 내 간절한 바람이기도 했다. 3년 차 시인이었지만, 내가 시인인 걸 아는 이는 극소수였다. 나는 무명이었기 때문이다. 대학 생활이 바쁘다는 핑계로 데뷔 후 시를 거의 쓰지 않았다. 원고 청탁이 전혀 없기도 했다. 이런 생활이 계속되면 시와 영영 멀어질 것 같다는 불안감이 들었다. 뭐라도 기록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내가 가입한 블로그는 서비스를 시작한 지 반년이 조금 넘은 상태였다. 제때 둥지를 찾은 셈이었다. 음악 형식을 구성하는 가장 작은 단위이면서 예술 작품의 창작 동기가 된 작가의 중심 생각이 바로 모티프다. 동기를 발견하기 위해 가장 작은 단위부터 차근차근 적어나가기로 마음먹었다. 누가 보거나 알아주지 않아도 틈나는 대로 뭔가를 썼다. 나는 나의 모티프를 쥐고 싶었다. 무엇이 나를 쓰게 하는지, 내가 쓴 것이 나를 어디로 이끄는지 알고 싶었다. 무수한 실마리 중 어떤 것이 글이라는 실타래로 결속될 수 있을지 궁금했다.
블로그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별명을 정해야 했다. 이전까지 내가 주로 사용하던 별명은 ‘실버’였다. 내 이름이 ‘은’이기 때문에 단순하게 지었음을 시인해야겠다. 다시 쓰기로, 제대로 써보기로 결심한 참이니 다른 닉네임이 필요했다. 블로그를 왜 개설하기로 했는지를 떠올린 후, 나는 닉네임을 적는 난에 ‘불현듯’을 입력했다. 문득, 갑자기, 느닷없이, 난데없이, 별안간, 돌연히 등 불현듯을 대체할 수 있는 단어들이 많았으나 꼭 ‘불현듯’이어야만 했다. “불 켠 듯”에 어원을 둔 ‘불현듯’은 빛과 불을 다 포함한 개념이기 때문이다. 이 단어가 생길 때에는 전기가 없었을 테니, 불을 켜는 일은 빛을 밝히고 온도를 높이는 일이었을 것이다. 깜깜한 한밤중, 촛불을 켤 때 태어나는 작고 밝고 따뜻한 느낌을 잊지 않고 싶었다.
블로그를 개설하고 1년쯤 흐르자 자연히 이웃이 생겨났다. 개중에는 시인들이 많았다. 그들은 나를 “현듯이”라고 불러주었다. 마치 ‘불’이 성이고 ‘현듯’이 이름인 것처럼. 그들의 격려 속에서 나는 다시 시를 쓸 수 있었다. 시를 쓰는 데 반드시 필요한 것은 지면(紙面)이 아니었다. 모티프를 쥐고 싶은 마음, 작은 불빛 한 점을 가슴에 품고 매일매일 기록하는 태도였다. 돌이켜보니 내가 시인이 된 것도 불현듯 찾아온 일이었다. 내 삶의 분기점에는 늘 저 단어가 있었다. ‘불현듯’ 앞에서 당황하거나 난감할 때도 많았지만, 나는 새 둥지를 트는 마음으로 불을 켰다. 켜지 않으면 빛도 온기도 깃들지 않으니까. 불을 움켜쥐려는 용기와 그 불을 꺼트리지 않겠다는 의지만이 필요했다.
어떤 단어는 중요한 순간마다 나타나 삶을 관통한다. 잊고 있었다가도 결정적일 때 다시 나타난다. 따뜻한 커피 한 모금에 펼쳐지는 지난날의 한 장면처럼, 어떤 길을 지날 때 엄습하는 기시감처럼, 한 문장을 쓰고 마침표를 딱 찍었을 때 “아, 되었다!”하고 튀어나오는 나직한 탄성처럼, 불현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