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석열 대통령이 31일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2024 대한민국 소상공인대회 개막식’에 참석해 축사를 위해 단상으로 향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 부부가 김영선 전 의원의 경남 창원의창 국회의원 재·보선 공천에 개입했음을 강력하게 뒷받침하는 통화 음성파일이 31일 공개됐다. 윤 대통령 부부가 김 전 의원 공천에 개입했다는 전언은 한둘이 아니지만, 윤 대통령 육성이 나온 건 처음이다. 윤 대통령 부부의 공천개입은 실체가 있는 사건임이 명확해졌다. 현직 대통령 부부가 정당민주주의와 대의민주주의를 흔들고 왜곡시킨 사건의 중심에 선 것이다. 실로 엄중한 사태로 규정하지 않을 수 없다.
더불어민주당이 이날 공개한 윤 대통령과 정치브로커 명태균씨의 2022년 5월9일 통화 녹음을 보면, 윤 대통령은 “공천관리위원회에서 나한테 들고 왔길래 ‘내가 김영선이 경선 때도 열심히 뛰었으니까 그거는 김영선이 좀 해줘라’ 그랬는데 말이 많네 당에서”라고 했다. 이에 명씨는 “진짜 평생 은혜 잊지 않겠다”고 했다.
민주당이 공개한 다른 통화 음성파일에서 명씨는 “지 마누라가 옆에서 ‘아니 오빠 명 선생 그거 처리 안 했어? 명 선생님이 아침에 이래 놀라셔가지고 전화오게끔 만드는 게 오빠 대통령으로서 자격 있는 거야?’ 그래서 (윤 대통령이) ‘나는 분명히 했다’라고 마누라 보고 이야기하는 거야”라고 했다. 이어 “그리고 바로 (윤 대통령과의 전화) 끊자마자 마누라(김 여사)한테 전화가 왔다”며 “‘선생님 윤상현이한테 전화했다, 보안 유지하시고 내일 취임식 오십시오’ 이렇게 됐다”고 했다. 명씨와의 통화를 듣고 있던 김 여사가 김 전 의원 공천 건을 해결하지 못했냐고 타박하자 윤 대통령이 해결했다는 취지로 말했고, 국민의힘 재·보선 공천관리위원장이던 윤상현 의원에게 전화도 했다는 것이다. 그 다음날 윤 대통령은 취임했고, 김 전 의원 공천도 확정됐다.
이 음성파일은 윤 대통령 부부의 공천개입을 보여주는 ‘스모킹 건’이 될 수 있다. 지금까지 공개된 여러 통화 녹취에서 명씨와 김 전 의원은 ‘김 여사가 공천받게 해줬다’ ‘명씨 덕택에 공천받았다’는 취지의 발언을 일관되게 했다. 이에 대해 대통령실은 ‘허무맹랑한 의혹’이라고 깎아내렸는데, 이들의 발언을 뒷받침하는 윤 대통령 육성이 공개된 것이다. 그러자 대통령실은 “통화 내용은 특별히 기억에 남을 정도로 중요한 내용이 아니었다” “명씨가 김영선 후보의 공천을 계속 이야기하니까 그저 좋게 이야기한 것뿐”이라고 해명했다. 취임을 하루 앞둔 대통령 당선인이 일개 정치브로커의 공천 민원 전화나 겉치레로 응대할 만큼 한가했다는 건가. 정말이지 국민을 바보로 아는 모양이다.
공천개입이 위법 소지가 크다는 건 윤 대통령이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공천개입을 수사·기소한 사람이 윤 대통령이고, 박 전 대통령은 이 건으로 징역 2년이 확정됐다. 더구나 김 전 의원 공천은 지난 대선 때 명씨가 윤 대통령 측에 3억7500만원 상당의 조작된 여론조사를 제공한 대가라는 의혹이 불거져 있다. 공직선거법 위반은 물론 정치자금법 위반, 뇌물 혐의까지 검토할 만한 사안이라는 뜻이다. 여기에 명씨의 지방선거 광역단체장 공천개입, 창원국가산단 지정 개입 의혹에 이어 정부의 대우조선해양 파업 강경 대응에 명씨가 관여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전방위에 걸친 명씨의 국정·선거 개입 의혹에 기가 막힐 지경이다.
대통령 부부를 업고 명씨라는 비선이 선거·국정까지 활개친 정황이 쏟아지는 와중에, 윤 대통령 육성까지 공개됐다는 건 ‘명태균 게이트’의 둑이 무너졌음을 뜻한다. 김 여사는 위법인 줄 알고 보안까지 강요하지 않는가. 이제 틀어막기 시도나 어설픈 해명은 사태를 더욱 악화시킬 뿐이다. 윤 대통령은 노도처럼 일어나는 국민적 공분 앞에서 명씨와 김 여사의 의혹 전모를 소상히 밝히고, 특검 수사를 자청하는 것 외에 달리 길이 없다. 지금이 자칫 통치불능 상태에 빠질 수 있는 비상시국임을 직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