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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앞에서 만난 ‘동학’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문 앞에서 만난 ‘동학’

파주출판단지의 이웃인 교하는 交河다. 사귈 교, 물 하. 두 개의 물이 서로 교차하는 곳이다. 문명이 발생하기에 좋은 장소이겠다. 가끔 교하도서관에 간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문을 통과한다. 예전 문은 여닫이가 많았지만 요즘은 미닫이가 대세다. 이런 문은 밀어야 하는가, 당겨야 하는가. 나의 경우 대부분 먼저 밀어본다. 가지는 것에 익숙한, 무엇이든 당겨 내 소유로 만들려는 아귀다툼에 익숙한 손으로서는 다소 이례적인 동작이겠다. 이제 이곳에 너무 오래 머물렀으니 얼른 저곳으로 나가겠다는 몸짓이 은연중에 표현된 것일까.

출입문을 통과하면 계단이다. 오르고 내림을 굳이 구별하지 않는 계단 끝에는 경찰의 ‘지명수배자’ 전단이 있다. 사기, 살인, 절도 등등의 범인들의 이름과 증명사진. 그렇게 문 하나, 또 하나의 문을 통과하면 책들의 숲이다. 그곳에서 작은 독자가 되어 신착도서를 살핀다. 공자, 니체, 하이데거의 철학과 시와 소설의 문학 코너를 둘러보고 <무한으로 가는 안내서 - 가없고 끝없고 영원한 것들에 관한 짧은 기록>(존 배로) 외 8권을 대출한 뒤 되돌아 나온다.

일생의 획을 그은 저자들은 서가에 그대로 두고, 범죄 혐의로 수배받는 자들은 벽에 그대로 붙여 두고 계단을 내려간다. 이크, 또 밀려고 한다. 이번에는 고맙게도 그대로 밀린다. 이 유리문은 밀고 당김이 그냥 하나이다. 그렇게 문을 나선 뒤 나는 뒤를 꼭 돌아본다. 한 글자를 새삼 확인하기 위해서.

우리나라 웬만한 문은 거의 같은 형식이다. 화장실 갈 때도 마찬가지다. 한쪽은 ‘출입문’, 다른 쪽은 ‘고정문’. 이 짧은 지시문에서 나를 사로잡는 건 ‘정할 定’이다. 나는 저 글자가 거느리는, 두텁게 입고 있는 한 뭉치의 한문을 떠올린다. 그것은 우리 겨레의 걸출한 사상인 동학(東學)의 주문(呪文)이다. 사는 건 어디를 오고 가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선 문을 들고 나는 건 필수이다. 그럴 때마다 나를 척 가로막으며 서 있는 글자를 매만지면서, 사실 신앙심은 전무하지만, 저 열세 글자의 뜻을 한번씩 외우며 새겨보는 것이다. 시.천.주.조.화.정.영.세.불.망.만.사.지(侍天主 造化定 永世不忘 萬事知·하늘을 마음에 모시면 조화가 제자리를 정해 영원토록 잊지 않고 모두를 깨달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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