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교육청이 내년 인공지능(AI) 디지털교과서 구독료 예산 256억원을 편성했다. AI 교과서 도입에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 정근식 서울시교육감 입장이었으나, 사실상 교육부의 AI 교과서 일괄 도입 기조에 발을 맞춘 것이다.
서울시교육청은 1일 10조8102억원 규모의 2025년도 예산 편성안을 공개했다. 세수 감소 등의 영향으로 올해보다 3503억원 액수가 줄었다.
항목별로 보면, 서울시교육청은 학생용 스마트 기기인 ‘디벗’(디지털+벗) 예산으로 1650억원을 편성했다. 올해 디벗 예산 1784억원에서 134억원 줄었으나, 대신 AI 교과서 예산이 256억원 새로 생겼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내년 AI 교과서 적용대상 공립·사립 초·중·고교에 내려갈 예산을 모두 편성했다고 보면 된다”며 “아직 AI 구독료가 확정되지 않아 향후 일부 조정은 가능하다”고 했다. 내년 AI 교과서는 초 3~4, 중1, 고1 수학·영어·정보·특수(국어) 과목에 도입된다.
서울시교육청이 AI 교과서 구독료 예산을 편성해 AI 교과서 전면 도입을 추진하는 것은 정 교육감이 밝힌 AI 교과서 도입 ‘신중론’과는 배치된다. 정 교육감은 취임 전후 언론 인터뷰나 토론회에서 “도입 유예” “전면 도입 신중 검토” 등의 입장을 내놨다.
반면 울산교육청은 내년도 AI 교과서 예산을 15억원만 편성했다. 전면 도입을 가정했다면 턱없이 작은 금액으로, AI 교과서 전면 도입에 반대하는 울산교육청의 기조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세수 부족과 더불어 “충분한 검증 기회가 필요하다” “학부모의 부정적 여론이 있다”며 AI 교과서 전면 도입에 우려를 표한 천창수 울산교육감의 의지가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2025년도 예산 편성 과정에서 교육부가 예산을 통해 시도 교육청에 AI 교과서 도입을 사실상 강제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교육부는 지난달 29일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 시행령을 개정해 AI 교과서 구독 학생 수가 많은 시도 교육청에 예산(교부금)을 더 많이 내려보내도록 했다. 정부의 감세 탓에 재정이 부족해진 시도 교육청 입장에선 추가 예산을 받기 위한 AI 교과서 구독 유인이 더 커졌다. 이에 교육계 일각에선 “사실상 교육자치 침해”라는 지적이 나왔다.
한편 이날 서울시의회 본회의에서 여당 측은 고교 무상교육 예산과 관련해 “서울시교육청 예산으로 반영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고교 무상교육예산을 중앙정부에서 지원하는 법안이 올해를 끝으로 일몰되면서, 앞으로 시도 교육청이 무상교육 예산을 모두 메워야 한다. 최호정 서울시의회 의장은 이날 “(정 교육감이) 고교 무상교육 예산을 굳이 쟁점화 해 국민에게 혼란 야기한 행태는 심히 우려스럽다”며 “먼저 서울시교육청 재원으로 고교 무상교육 예산을 반드시 반영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