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가 두려워…WP·LA타임스 발목 잡은 재벌사주들

워싱턴 | 김유진 특파원

해리스 지지하려다 돌연 취소…트럼프 눈치 보기 관측

후보들은 기성 언론보다 팟캐스트 등에 더 자주 출연

카멀라 해리스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왼쪽), 도널드 트럼프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연합뉴스

카멀라 해리스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왼쪽), 도널드 트럼프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연합뉴스

[주간경향] 현직 대통령(조 바이든)의 재선 도전 포기, 부통령(카멀라 해리스)의 대선후보 직행, 대선후보(도널드 트럼프)를 겨냥한 두 차례 암살 시도. 오는 11월 5일 대선을 앞두고 미국에서는 전례 없는 사건이 연달아 일어났다.

언론 보도 측면에서도 올해 대선은 이전과 달랐다. 미국 유력 일간지 워싱턴포스트는 36년 만에 특정 후보를 지지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해리스 후보를 지지하는 사설을 작성해놓고도 워싱턴포스트 사주인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의 반대로 사설 게재를 취소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파문이 일었다. 후보들의 정책을 검증하는 대선 TV 토론이 단 한 차례 열린 가운데 후보들은 기성 언론보다 팟캐스트 등 새로운 매체에 더 자주 얼굴을 내밀기도 했다.

■NYT와 달리 WP “지지 후보 선언 않겠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9월 30일 해리스 후보 지지를 공식 선언했다. 뉴욕타임스는 편집위원회 명의로 올린 ‘대통령을 위한 유일한 애국적 선택’이란 글에서 “유권자들이 그와 정치적 의견차를 갖고 있더라도 카멀라 해리스만이 유일하게 애국적인 대통령 후보”라며 “해리스는 필요한 대안 그 이상”이라고 밝혔다.

진보성향인 뉴욕타임스의 해리스 후보 지지 선언은 예견된 일이었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6월 27일 바이든 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의 첫 TV 토론 이후 민주당의 패색을 우려하며 ‘바이든 사퇴’ 여론을 사실상 주도하기도 했다.

역시 진보성향으로 분류되는 워싱턴포스트도 당연히 뉴욕타임스의 뒤를 따를 것으로 예상됐다. 워싱턴포스트는 1976년 이후 1988년 대선을 제외하고 대선 때마다 민주당 후보를 공개 지지해왔다.

그런데 지난 10월 25일 윌리엄 루이스 워싱턴포스트 최고경영자(CEO)는 “이번 선거에서 대통령 후보를 지지하지 않는다. 향후 어떤 대통령선거에서도 마찬가지다”라고 밝혔다. 즉각 워싱턴포스트 안팎에서 거센 비판이 일었다. 특히 워싱턴포스트 편집위원회가 해리스 후보를 지지하는 사설 초안을 작성했지만, 베이조스가 게재를 반대해 발행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후폭풍은 커졌다. 이 신문 칼럼니스트로 오랫동안 활동해온 로버트 케이건 오피니언란 편집장을 비롯해 논설위원들이 줄줄이 사임했다. 독자들의 항의도 빗발쳤다. 공영 라디오 NPR에 따르면 지난 10월 28일까지 워싱턴포스트 유료 구독자 총 250만명(종이신문과 디지털 뉴스 합산) 가운데 8%인 20만명 이상이 구독을 취소했다.

파문이 확산하자 베이조스는 “특정 신문의 대통령 지지 선언은 선거의 향방에 어떤 영향도 주지 못한다. 그런 지지 선언은 해당 매체가 편향적이고, 독립적이지 못하다는 인상만 만들 뿐”이라고 밝혔다. 또한 트럼프 후보의 당선 가능성을 고려한 것이라는 의혹은 “향후 대가를 계산하는 행동은 하지 않는다”고 부인했다.

■억만장자 소유 언론의 결정은 우연일까

베이조스의 입장 표명에도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해리스 후보 지지 사설 게재가 무산된 시점에 베이조스가 이끄는 우주탐사 기업 블루오리진 경영진들이 트럼프 후보와 회동한 사실도 보도됐다. 베이조스가 대선 결과에 따라 사업에 차질이 빚어질 것을 우려해 후보 지지 선언을 막은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특히 워싱턴포스트와 비슷한 시점에 로스앤젤레스(LA)타임스도 대선후보 지지 선언을 중단했는데, 이 역시 2018년 이를 인수한 사주 패트릭 순시옹의 입김이 작용했다. 마리엘 가르자 LA타임스 편집장은 “해리스 후보 지지 선언 초안을 작성하던 중 순시옹으로부터 이를 철회하라는 메시지를 전달받았다”고 폭로한 뒤 자리에서 물러났다. 캘리포니아주 최대 신문인 LA타임스 역시 구독 취소가 빠르게 늘고 있다.

대통령선거에서 특정 후보를 지지하지 않기로 한 워싱턴포스트와 LA타임스의 결정은 언론의 정치 성향 표명 관행에 대해 되돌아볼 기회를 제공하는 측면도 있다. 하지만 미 대선을 일주일여 앞두고 뒤늦게 나온 결정이라는 점에서 트럼프 후보 ‘눈치 보기’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미국 월간지 ‘디애틀랜틱(The Atlantic)’은 “그동안 두 신문이 트럼프가 공직에 확실하게 부적격하다고 보도해온 점에 비춰 해리스 지지 보류는 순전한 비겁함으로 보인다”면서 특히 ‘타이밍’을 문제 삼았다. “신문들이 트럼프의 대선 승리 가능성에 대비하고 있으며, (트럼프 2기) 행정부에 저항하는 대신 그에 맞추려고 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을 불러일으킨다”고도 밝혔다. 워싱턴포스트의 워터게이트 특종 보도를 이끈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도 성명을 내고 “사설의 독립성을 존중하지만 대선을 12일 앞두고 나온 이번 결정은 그간 신문이 트럼프가 민주주의에 제기하는 위협에 대해 제시해온 수많은 보도 증거를 외면한다”고 비판했다.

■후보들 팟캐스트 인터뷰 활발…유권자 맞춤형 공략

한편 이번 선거에서 대선후보들은 기성 언론과의 인터뷰에 응하기보다 인기 팟캐스트에 자주 출연하는 경향을 보였다. 팟캐스트가 후보들의 메시지 창구로 주목받게 된 것은 선거캠프가 특정 유권자 집단을 겨냥해 지지를 호소하기에 효과적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특히 승패를 좌우할 수 있는 부동층 유권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계산도 깔려 있다.

트럼프 후보는 투표 참여도는 낮지만 트럼프 후보 지지 성향이 높은 젊은 남성들을 집중 공략 대상으로 삼았다. 재생산 권리 보호를 내건 해리스 후보는 여성들이 즐겨듣는 팟캐스트를 선호했다. 흑인 남성들에 영향력이 큰 샤를라마뉴 다 갓이 진행하는 라디오쇼 브렉퍼스트 클럽에도 출연했다. 과거 확고한 민주당 지지층이었으나 최근 민심 이반 조짐을 보인다는 분석이 나오는 흑인 남성 표심을 붙들기 위한 행보라는 해석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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