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나의 일이 된다면

최미랑 기자
전쟁이 나의 일이 된다면

전쟁 불안을 호소하는 사람이 많다.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전은 3년째 계속되고 있고, 이스라엘이 시작한 가자전쟁도 13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엔 북한의 러시아 파병까지 확인되었다.

지구촌 어딘가에서 전쟁은 계속돼 왔다.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지만 아프리카 수단에서는 1년 6개월째 내전이 계속되고 있다. 미얀마에서는 2017년 군부가 로힝야족을 대대적으로 탄압하기 시작해 지금까지 100만명 이상이 난민이 됐다.

멀게 느껴지던 전쟁은 우크라이나와 가자의 참상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생생하게 전달되며 훨씬 가깝게 느껴지게 됐다. 몇 년 전 어느 유튜버가 환하게 웃으며 ‘가자 지구로 놀러 오라’하는 영상을 이제는 불에 타버린 그곳 모습과 함께 본다거나, ‘100만 유튜버가 꿈’이라고 수줍게 웃던 팔레스타인 청소년이 폭격으로 사망한 소식을 접할 때, 당연하게 누리던 평화를 전쟁이 완전히 삼킬 수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당장 전쟁을 멈출 수 없다는 사실에 많은 이들이 무력감을 느낀다. 이럴 때 평화를 바라는 마음으로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전쟁 한가운데 있는 이들이 바다에 유리병 편지를 띄우듯 쓴 책을 읽어보는 게 아닐까.

우크라이나와 가자 지구에서 전쟁을 겪는 이들이 쓴 책 세 권을 소개한다. 이들 중에는 전쟁터에 남은 이도 있고, 피난 중인 이도 있다. 직접 책을 펴낼 처지는 못 돼 타국의 출판 관계자들에게 원고를 보내 작업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푸틴의 전쟁에 반대하는 러시아인이 전쟁터에서 남긴 기록도 있다.

전쟁이 나의 일이 된다면

전쟁이 나고 말았다

노라 크루크 지음 | 장한라 옮김|엘리|132쪽|2만1000원

“우리 아이들은 전쟁의 아이들이 되고 말았다. 부서진 세대가 되고 말았다.” (책 30쪽)

이야기는 우크라이나 기자 K와 러시아 예술가 D의 것이다. 이야기를 듣고 엮은 이는 독일 작가다.

전쟁이 발발하자 저자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지인들이 걱정돼 연락을 돌린다. 우크라이나 기자 K, 푸틴에 반대하는 러시아 예술가 D와는 매주 연락을 주고 받는다.

52주간 D와 K와 주고받은 이야기를 기록해 논픽션 그래픽노블로 펴냈다. 아이와 가족들은 어떻게 지내는지, 폐허가 된 키이우를 기자들이 어떻게 지켰는지, 전쟁 가해국의 국민으로선 무엇을 느끼는지, 전쟁터의 당사자들이 어떤 일상을 겪는지 생생히 드러냈다.

전쟁이 나의 일이 된다면

전쟁일기

올가 그레벤니크 글·그림|정소은 옮김|이야기장수|136쪽|책1만2000원

“내 나이 서른다섯에 모든 것을 처음부터 시작해야 할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2022년 2월24일 오전 5시, 그는 폭격 소리에 잠에서 깼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완전히 파악하지도 못한 채 짐을 챙기기 시작한 그는 아홉 살과 네 살 아이의 팔에 이름과 생년월일, 연락처를 적는다. “혹시나 사망 후 식별을 위해서”다. 그러나 “왜 적는 거야?”라고 묻는 네 살 딸에겐 솔직히 답하지 못한다. “우리, 지금 놀이를 하는 거야.” “무슨 놀이?” “‘전쟁’이란 놀이.”

<전쟁일기>는 한 가족의 평범한 일상이 전쟁으로 무너져 내리는 과정을 연필 한 자루로 기록한 책이다. 전쟁 발발 후 지하실을 방공호 삼아 8일을 보내고, 가족과 이별한 채 피난을 떠나는 과정이 일기 형식으로 담겼다.

이 책은 먼저 출간된 원서 없이 한국에서 처음 나왔다. 우크라이나 현지에서 출판이 어려운 상황이기에, 한국 출판사의 편집자·번역자가 작가와 직접 소통하며 작가가 휴대전화 카메라로 찍어 보내온 그림의 연필선을 살려 책으로 펴냈다.

전쟁이 나의 일이 된다면

집단학살일기

아테프 아부 사이브 지음 | 백소하 옮김|두번째테제|532쪽|2만2000원

2023년 10월, 저자는 팔레스타인 문화유산의 날을 기념하기 위해 가자 지구 자발리야 난민촌의 고향 집에 방문한다. 갑자기 시작된 폭격에 휘말리면서 전쟁의 중심에 서게 된다.

이 책은 2023년 10월 7일부터 저자가 라파를 통해 이집트로 나오게 되는 12월 30일까지 85일간의 일기를 엮은 것이다. 일기는 10월 7일, 불과 며칠 전 가자에 도착하여 아들과 친척들과 바다에서 아침 수영을 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갑자기 포탄이 떨어지며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제대로 알아차리지도 못한 채, 이렇게 이들의 고통이 시작된다. 이후 가자 지구에서 평범하게 살아가던 대다수 팔레스타인 사람들처럼 저자 역시 가족과 친지, 친구를 잃고 자신의 고향이 파괴되는 모습을 지켜보게 된다.

저자는 2015년에 소설 <유예된 삶>을 펴냈다. 가자의 난민촌에서 나고 자란 경험을 바탕으로 쓴 자전적 작품이다. 그는 2019년 가자 서안 지구로 이주한 이래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문화부 장관직을 맡고 있기도 하다. 그의 일기는 언론인이 나날이 살해당하는 열악한 상황에서 텔레그램과 메시지를 통해 전달돼 전 세계에서 출판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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