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동작구 사당동에 위치한 이수극동·우성2·3단지(이하 우·극)는 대단지 아파트 리모델링의 성공사례가 될 수 있을까.
우·극은 서울에서 단일 리모델링 단지로는 가장 많은 3458가구 규모다. 리모델링을 거치면 기존 가구 수에서 520가구가 더 늘어난다. 주민들의 입을 빌리자면 “집을 가는건지, 언덕을 오르는지” 알 수 없을 정도의 가파른 단지 내 경사로도 평탄화 작업을 통해 평지로 탈바꿈한다. 단지 평탄화 작업은 통상 건물을 모두 허물고 땅을 밀어낼 수 있는 재개발이나 재건축에서 주로 시행해왔다.
신이나 우·극 리모델링주택 조합장은 “리모델링은 아파트 골조를 건드리지 않고 해야하기 때문에 평탄화 과정에서 땅을 파내면 건물의 하부 골조가 드러난다”며 “이 골조를 보강한 뒤 건물 자체를 필로티 구조로 바꾸는 방식으로 공사가 이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언덕이었던 부분을 평지로 깎으면서 기존 1층이 2층 높이의 필로티 1층 구조로 바뀌는 것이다. 평탄화 작업으로 단이 생긴 아랫 동과 윗 동 사이에는 계단과 엘리베이터가 설치된다.
우·극은 언덕 구간이 많다는 것이 단점이지만 단지 내에 학교가 있고, 전통시장 등 주변 인프라가 풍부한 것은 장점으로 꼽힌다. 서울지하철 7호선 이수역을 접하고 있는 역세권 단지이기도 하다. 입지 면에서는 가치가 충분히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곳이 재건축이 아닌 리모델링을 택한 이유는 사업성 때문이다.
조합은 서울시의 ‘2030 서울특별시 도시·주거환경정비 기본계획’에 맞춰 법적 용적률을 기존 300%에서 500%로 높여 사업성 비교를 했지만 이 역시 추진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우·극의 현황 용적률(재건축 전 아파트 용적률)이 252%에 달하기 때문이다. 통상 용적률이 180~200%를 넘어가면 사업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판단한다.
물론 재건축 자체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일대일 재건축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일대일 재건축은 일반분양 물량을 거의 만들지 않고 기존 세대 수를 유지하는 재건축을 말한다. 때문에 각 조합원들이 내야하는 분담금이 크다. 신 조합장은 “서초구 반포동에는 분담금을 12억원씩 내고도 일대일 재건축을 추진하는 곳이 있지만 우리 아파트는 주민 대다수가 그럴 경제적 여력이 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재건축이냐, 리모델링이냐를 가른 ‘사업성’
아파트 단지를 주변으로 거미줄처럼 형성된 저층 빌라와 전통시장도 재건축을 막는 장애물이다. 용적률을 500%까지 받으려면 단지 안팎의 기반시설 정비가 이미 돼 있고, 도로가 격자무늬여야 한다. 계획도시로 조성된 노원구 중계·상계동, 강동구 고덕동 등이 대표적이다.
반면 1980년대까지 판자촌이었던 곳을 정비하고 조성된 우·극 주변에 자연스럽게 조성된 상가와 시장이 발목을 잡았다. 법적 용적률 500%를 받아 재건축하려면 단지 진입 도로를 현재의 두 배로 확장해야 한다. 그러나 도로로 확보해야 할 토지들이 전부 상가나 빌라가 들어서 있는 개인 땅이다. 신 조합장은 “평(3.3㎡)당 2억원씩 하는 땅을 어떻게 전부 사들일 수 있겠나. 월세 수익만 월 1000만원인 건물이 자리잡은 땅을 사들인다는 게 현실적이지 않다. 구청이 사줄 것도 아니지 않느냐”라고 말했다.
리모델링으로 방향을 잡은 우·극 아파트는 건설업계에서도 주목하고 있다. 대단지에서도 리모델링으로 주차장 전면 지하화 및 각종 커뮤니티 시설, 단지 내 공원 조성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모범사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조합은 현재 시공사 선정 및 1차 안전진단을 앞두고 있다. 수직·수평 리모델링이 가능하려면 안전진단 B등급 이상을 받아야 한다. 신 조합장은 “2년 전에 현충원 옹벽이 무너지면서 우리 아파트도 일부 단지 외벽이 파손됐는데 그때 서울시에서 진행한 구조안전진단에서는 B등급을 받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건설사 선정작업은 현재 진행 중이다. 국내 건설사 가운데 리모델링 실적이 가장 많은 포스코이앤씨를 비롯해 현대건설·현대엔지니어링·SK에코플랜트가 컨소시엄으로 단독 입찰한 상태다.
한 대형 건설사는 “리모델링은 재건축과 달리 철거에서부터 증축까지 특수 전문기술이 들어가야 하는 영역이다 보니 아무리 대형 건설사라도 손을 못 대는 부분이 있다”면서 “서울에는 재건축이 가능한 단지가 이제 많지 않아 건설사들도 리모델링 영역까지 포트폴리오를 확장하려는 시도를 많이 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재건축 할 수 있는 기회를 줬다’고 하는데, 사업성이 안 나와 못 하는 걸 어떻게 하라는 걸까요.”
서울 용산구 이촌한가람 아파트에서 리모델링을 추진하는 차주환 조합장은 1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렇게 반문했다. 용적률이 300% 넘게 지어진 이 아파트는 재건축을 한다해도 기부채납, 임대주택 의무건설 등 여러 조건을 감안하면 사업성이 안 나온다는 취지였다.
지난 8월 서울시는 ‘2030 서울특별시 도시·주거환경정비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현황 용적률(재건축 전 아파트 용적률)이 높은 기존 과밀단지나 사업성이 낮아 재건축 추진이 어려운 주택단지의 사업성을 개선해주는 게 주요 골자다.
그러자 ‘재건축의 신’이라 불리는 한형기 전 아크로리버파크(서울 서초구 반포동) 조합장이 동부이촌동 리모델링 단지에 나타났다. 그는 지난달 26일 이촌1동 재건축추진협의회 초청으로 나온 강연 자리에서 “서울시 기본계획대로 용적률을 완화하고 3종 주거지를 준주거지로 종 상향하면 재건축을 해도 사업성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촌1동 재건축추진협의회는 리모델링을 반대하는 조합원들이 만든 모임이다.
사업성만 확실히 있다면 리모델링보다 재건축이 나을 수 있다. 그러나 이촌동 한가람아파트 리모델링주택조합은 정기총회를 통해 리모델링을 계속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서울시의 발표대로 적용해봐도 사업성이 안 나온다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이촌한가람 아파트의 현황 용적률은 358%다. 용도지역을 3종 주거지에서 준주거지로 상향해 허용용적률(지구단위계획을 통해 정해지는 용적률)을 358%로 인정받을 경우 법적 상한 용적률은 약 1.25배인 447%가 된다. 여기에 종 상향에 따른 기부채납 순부담 비율(한강변 공공시설 제공 순부담비율 10%·종상향에 따른 공공기여율 7.39%)인 17.3%가 재건축 대지면적에서 빠진다.
이촌한가람의 구역 면적은 6만1305㎡이지만 정비기반시설 면적과 한강변 공공시설 제공 기부채납·종 상향에 따른 공공기여를 제외하면 재건축 대지면적은 4만7101㎡까지 줄어든다. 법적상한 용적률(447%)을 적용하면 건축할 수 있는 연면적(지하층을 포함하는 바닥면적의 합계)은 21만919㎡다. 법정상한 용적률 확보를 위한 임대주택과 종 상향에 따른 판매시설(10%) 의무비율을 제외하면 분양면적은 17만8565㎡(지상 커뮤니티 시설면적 1000㎡ 미반영)로 더 줄어든다. 조합원 소유 전체 연면적인 21만9072㎡보다 작은 규모다.
이대로라면 재건축 이후 조합원 2036세대가 그대로 돌아와 살기 위해서는 일반분양 매물 없이 전용면적 59㎡는 47㎡로, 84㎡는 67㎡로, 114㎡는 91㎡로 집을 줄여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재건축은 분양 매물이 많을수록 사업성이 높아지는데, 사업성은 커녕 집 규모를 줄이거나 현금청산을 하고 나가야 한다는 계산이 나오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