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한의 치열한 ‘영남 구애’…누가 웃을까

윤호우 선임기자

윤-한, 경쟁적으로 ‘보수의 텃밭’ 찾아 여권 주도권 싸움

총선 이후 윤 대통령 외면…한 대표에 힘 실어줄지 관심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당대표가 지난 10월 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파인그라스에서 대화하며 면담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당대표가 지난 10월 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파인그라스에서 대화하며 면담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주간경향] 지난 10월 30일 윤석열 대통령은 경북 울진에서 열린 신한울 원전 1·2호기 준공식과 3·4호기 착공식에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윤 대통령은 박정희 전 대통령을 치켜세우며 “이런 지도자들의 혜안과 결단 덕분에 원전 강국이 됐다”고 말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찬사는 며칠 전 여당 대표의 입에서도 나왔다. 지난 10월 26일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박정희 전 대통령 45주기 추도식에서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박 전 대통령께서는 도전 정신과 애국심으로 변화와 쇄신을 이끌었다”고 말했다. 이날 추도식에서는 박근혜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한 대표를 향해 욕설하는 돌출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윤-한, 영남과 아무런 지역적 연고 없어

윤 대통령의 배우자인 김건희 여사를 둘러싸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윤 대통령과 한 대표가 최근 며칠 사이 박 전 대통령 찬사에 경쟁적으로 나선 것은 눈여겨볼 만한 대목이다. 박 전 대통령을 여전히 보수의 상징으로 여기는 영남 지역에서 윤-한 대결의 승패가 결정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보수정당인 국민의힘을 떠받치고 있는 열성 지지자의 3대 주축은 영남·노령 유권자·부유층이라고 할 수 있다. 세 가지 중 두 가지 특성을 갖고 있는 ‘영남의 나이 많은 유권자’가 사실상 여당의 정책 방향성을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때도 마지막까지 지지를 거두지 않았다. 최근 김 여사에 대한 특검 요구 등 야당의 공세에 밀리고 있는 여권이 그나마 마지막 끈을 쥐고 있는 것도 영남이라는 지역적 기반이 있기에 가능하다.

지난 10월 16일 부산 금정구청장 보궐선거에서 국민의힘은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의 단일화에도 큰 격차로 승리했다. 한 대표가 김 여사에 대한 의혹 해소를 용산 대통령실에 적극적으로 주문하고 나선 것은 이곳 부산 금정구청장 선거 승리에서 비롯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선거 전 한 대표가 이곳을 여섯 번이나 방문했고, 선거 후에는 윤 대통령과 한 대표가 각각 다른 시간에 경쟁적으로 이곳을 찾은 이유도 여권의 주도권 다툼과 관련이 깊다.

윤-한 대결에서 두 정치인이 영남과 아무런 지역적 연고가 없다는 점은 흥미롭다. 다만 현재 친윤(친윤석열)계의 영남 지역 의원들 다수는 중진이고 수적으로도 유리한 반면, 친한(친한동훈)계는 대부분 초선이고 숫자가 얼마 되지 않는다. 친한계에 속하는 한 당내 인사는 “영남 지역에서는 지역 주민이 여당이 힘을 합쳐 잘되기를 바랄 뿐이지, 친윤과 친한을 가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른 한 친한계 인사는 “영남은 유교적인 보수 사상이 아직 남아 있는 곳인데, 김 여사가 윤 대통령의 결정을 좌지우지했던 것에 대해 우호적이지 않다”면서 “왜 윤 대통령이 집안을 제대로 추스르지 못하냐는 정서를 갖고 있다고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영남 보수가 내세우는 ‘박정희 정신’과 관련해서는 윤 대통령이 우위에 서 있다고 하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윤 대통령은 대선 국면에서 5·18광주민주화운동을 평가하는 등 호남을 향한 구애 전략을 펼쳤다”며 “대통령 취임 이후 지지율이 내려가면서 오히려 대구 서문시장을 방문하는 등 영남 수성 전략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유권자가 확장되는 국면에서는 호남을 향한 서진 전략을 펼치고, 유권자가 축소되는 국면에서는 영남을 지키는 동진 전략을 펼치는 것이 국민의힘의 통상적인 공식이라는 것이다. 홍 소장은 “그런 측면에서 이미 영남은 윤 대통령이 선점한 반면, 한 대표는 뒤늦게 영남 유권자 경쟁에 뛰어들었다”면서 “결국 영남 민심은 윤 대통령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신뢰하는 반면, 한 대표에 대해서는 여전히 보수 지도자로서의 적합도를 따지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영남 지역 유력 일간지 매일신문은 지난 10월 30일자 지면에 ‘한동훈 방식은 필패한다’는 조두진 논설위원의 칼럼을 실었다. 조 논설위원은 야당과 여론에 떠밀려 총구를 내부로 돌리는 ‘한동훈 방식’은 적당하지 않다며 총구를 외부로 돌려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즉 총구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향해야 한다는 것이 골자다. 이 칼럼은 영남의 정서를 일부 드러내고 있기도 하다. 홍형식 소장은 “지난 7월 전당대회에서 영남은 한 대표에게 ‘선이재명, 후김건희’를 사실상 주문했다”고 말했다. 이번 달에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재판 1심 선고 등을 앞둔 이재명 대표의 공격수로는 검사 출신인 한 대표가 적당하다고 본 것이다. 홍 소장은 “그런데 재보선을 앞두고 한 대표가 선거에서 불리해지자, 김 여사 카드를 먼저 꺼내 들었다”고 말했다.

차기 대선주자 경쟁과도 복잡한 역학관계

지난 4월 총선 이후 여권에 대한 민심은 극도로 악화했다. 김 여사에 대한 의혹이 줄줄이 터져 나왔지만 윤 대통령은 특검법 거부권으로만 맞섰다. 이런 과정에서 윤 대통령을 옹호하던 ‘영남 정서’의 방어선도 무너지기 시작했다. 갤럽의 지난 10월 넷째 주 조사에서 윤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20%로 최저치를 기록했다. 대구·경북(TK)에서는 26%, 부산·울산·경남(PK)에서도 27%에 불과했다. 다른 지역보다는 높지만 유권자의 겨우 4분의 1 정도만 윤 대통령을 지지했다(자세한 여론조사 결과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하지만 국민의힘 지지율은 각각 46%를 기록하며 확실한 우위를 지켰다. 안일원 리서치뷰 대표는 “영남은 여전히 국민의힘이나 한 대표에게는 신뢰의 끈을 쥐고 있다고 볼 수 있다”고 해석했다. 절반에 가까운 지지율을 확보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앙정치의 차원에서 봤을 때 보수층의 상당수가 윤 대통령에게 등을 돌렸다. 김 여사에 대한 의혹이 계속 터져 나오면서 추세적으로는 우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안 대표는 “김 여사 사건을 털고 가지 않으면 계속 수세에만 몰리는 국면이기 때문에 한 대표가 대표 취임 후 100일 동안 여러 노력을 했으나 허사였다”고 해석했다. 이런 상황에서 영남 역시 결국 보수의 대안인 한 대표에게 힘을 실어줄 수밖에 없다는 것이 안 대표의 예측이다.

‘비한동훈’ 깃발을 들고 나선 오세훈 서울시장도 점점 주목받고 있다. 오 시장은 지난 10월 29일 여당 중진들과 모임을 하고 ‘여당이 흔들리고 있다’는 위기 진단을 내렸다. 한 대표를 겨냥한 공세라고 할 수 있다. 안 대표는 “오 시장은 지금 시장직을 수행하고 있어서 김 여사 의혹을 둘러싼 중앙 정치에 얼굴을 내밀 상황이 못 된다”고 말했다. 홍 소장은 “영남에서는 한 대표에 대한 믿음이 사라지면 대신 강경 보수주의자이자 영남 출신인 홍준표 대구시장에 관심을 더 가질 수 있다”고 내다보았다. 차기 대선주자를 둘러싼 영남권의 경쟁은 ‘윤-한’ 대결 속에서 복잡한 역학 관계를 지니고 있다. ‘윤-한’ 대결에서 영남은 과연 누구의 손을 들어줄 것인가. 누구든 이곳의 민심을 얻는 사람이 유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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