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쿄전력이 2011년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폭발사고 후 처음으로 핵연료 잔해(데브리)를 격납용기 밖으로 꺼내는 데 성공했다. 이번에 반출한 데브리 파편은 길이 5㎜ 이하, 무게 3g에도 미치지 못하는 극소량이다. 동전 크기보다 작은 파편을 끄집어내는 데만 무려 13년이 걸린 것이다. 후쿠시마 원자로 안에는 아직 880t의 데브리가 남아 있다.
사고 원자로를 해체하는 것은 전 세계에 전례가 없는, 매우 어려운 작업이다. 핵연료봉이 녹아 건물 잔해물과 함께 굳어진 데브리는 지금도 치명적인 양의 방사능을 뿜어내고 있어 인간은 물론 로봇의 접근조차 쉽지 않다. 도쿄전력은 2017년 원자로 안으로 카메라가 장착된 로봇을 들여보냈지만, 시간당 650㏜(시버트)로 추정되는 엄청난 방사능 등의 영향으로 로봇이 작동을 멈춰 실패한 바 있다.
이번 반출 작업도 우여곡절을 거쳐야 했다. 원자로 안이 데브리로 꽉 차 있어, 로봇이 들어갈 통로 확보부터 쉽지 않았다. 오작동이 계속되자 애초 계획했던 로봇 팔을 포기하고 낚싯대 모양의 로봇으로 교체했지만 이조차 장비 결함 등으로 인해 2차례나 시도가 무산됐다.
가장 큰 문제는 끄집어냈다고 끝이 아니란 사실이다. 도쿄전력은 반출된 파편에서 위험 수준을 넘는 방사선량이 측정될 경우 인근 주민과 작업자에게 미칠 영향을 고려해 이 파편을 다시 격납용기 안으로 되돌려 둘 방침이라고 밝혔다. 실제 일본 반핵단체들은 전체 880t 중 3g에 불과한 파편 채취는 아무 의미가 없으며, 정부는 그보다 원자로 해체 후 저 엄청난 방사성폐기물을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한 계획부터 세워야 한다고 지적한다.
데브리 반출 작업은 앞으로도 예상치 못했던 난관에 부딪힐 것이다. 그래도 기술력을 총동원해서 신중하고 끈질기게 추진해 나가는 수밖에 없다. 데브리가 남아 있는 한, 이와 접촉한 빗물·지하수 등으로 매일 90t가량의 방사능 오염수가 끝없이 생성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류가 교훈을 얻는 데는 이 거대한 재난만으로 부족한 것일까. 일본 정부는 최근 동일본 대지진 피해 지역에 위치한 오나가와 원전을 13년 만에 재가동했다. 후쿠시마 원전에 쌓여 있는 880t의 데브리만큼이나 좌절스러운 결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