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성소수자 정신건강 손 놓은 정부

정민석 청소년성소수자지원센터 ‘띵동’ 대표

질병관리청은 대한민국 청소년의 건강행태 현황을 파악하고자 매년 ‘청소년건강실태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약 5~6만명 정도의 청소년들이 익명으로 참여하고 있고, 흡연·음주·식생활부터 성 행태·정신건강 등 총 100여개의 설문 응답 결과를 확인할 수 있으니, 청소년 건강증진 사업을 기획하고 평가하기에 유의미한 조사임이 분명하다. 다만, 현재로선 남녀 여부를 확인하는 성별 문항만 존재하고 있어 청소년 성소수자의 건강 상태가 어떤지 전혀 확인할 수 없다.

최근 국정감사 기간에 한 의원실을 통해 청소년 성소수자 정신건강 실태가 어떤지 유추해 볼 수 있는 자료를 확보하였다. 2013년부터 2016년까지 성관계 경험률을 확인하는 설문 문항에서 이성·동성과의 성관계를 구분해서 조사했고, 자살률과 교차 분석하면서 정신건강 위기 현황을 확인할 수 있었다. 관련 연구가 전혀 없는 상황에선 기초 현황을 파악하는 데 필요한 분석 과정이었다.

결과는 처참했다. 동성과 성관계 경험이 있다고 한 응답자가 성관계가 없다고 한 응답자보다 우울감은 1.9배, 자살 생각은 2.7배, 자살 계획은 5.9배, 자살 시도는 7.6배 높다는 결과가 나왔다. 4년 내내 최근 12개월 동안의 자살 생각, 자살 계획, 자살 시도, 자살 시도 후 병원 치료 경험 모두 이성과 성관계한 응답자보다, 성관계가 없다고 한 응답자보다, 월등히 높았다. 특히 자살을 시도한 사람 중에 병원 치료 경험이 있다는 응답자는 약 55.5%로, 정신건강이 매우 심각한 위기 상황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런 결과를 감추고 싶었던 것일까. 공식 홈페이지에 공개되는 통계 결과 자료에서는 성관계 경험 유무만을 드러내고 있었고, 2017년부터는 교육부의 요구라며 석연치 않은 이유로 문항 자체가 변경되었다. 과거의 자료라고 치부하기엔 위기는 컸고, 후속 대책은 전혀 마련되지 않았다.

올 한 해 성소수자 자살 관련 이슈를 사회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노력해 왔다. 자살 예방 정책에서조차 철저하게 배제되어 온 현실을 폭로하며, 대안 마련을 촉구하는 시민 서명과 기자회견을 개최하기도 했다. 생명권을 보장받는 것이 인권의 출발점이지만, 우리 사회는 성소수자의 삶뿐만 아니라 ‘죽음’의 문제에 대해서도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다. 교육 현장은 성소수자 학생의 존재를 지우기 급급하고, 차별과 혐오가 확산하는 상황에선 달라질 현실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청소년건강실태조사’에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을 확인하는 문항만 포함된다면 청소년 성소수자의 정신건강 실태조사를 쉽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소위 김건희 예산이라고 불리는 ‘전 국민 마음투자 지원사업’ 예산을 삭감하겠다고 벼르지만 말고, 자살 위기에 노출된 이들의 현황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추가 예산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니, 망설일 이유가 전혀 없다.

정민석 청소년성소수자지원센터 ‘띵동’ 대표

정민석 청소년성소수자지원센터 ‘띵동’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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