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지켜주겠죠” 맹골수도 뛰어들었던 세월호 잠수사, 10년 만에 아이들 곁으로

이예슬 기자    배시은 기자
경기 화성시 함백산장례식장 1층에 지난 3일 세월호 민간잠수사 고 한재명씨의 빈소가 차려져 있다. 이예슬 기자 사진 크게보기

경기 화성시 함백산장례식장 1층에 지난 3일 세월호 민간잠수사 고 한재명씨의 빈소가 차려져 있다. 이예슬 기자

“아이고, 내 새끼 불쌍해라! 우린 어떡하니….”

경기 화성시 함백산장례식장 1층에 차려진 세월호 민간잠수사 고 한재명씨(49)의 빈소에 4일 오전 7시쯤 통곡소리가 흘렀다. 백발 노모가 쓰러질 듯 벽에 기대어 오열하는 모습에 담담히 빈소를 지키던 다른 유족들도 얼굴을 감싸며 눈물을 훔쳤다.

“제발 좋은 곳으로 가라.” 전날부터 빈소를 지킨 동료 잠수사들도 한씨에게 마지막 절을 올렸다. 이들은 한씨의 영정 앞에서 쉽게 고개를 들지 못했다. “이제는 편히 쉬어.”

한씨 유해는 4일 함백산추모공원에 안치됐다. 동료 잠수사들이 한씨의 관을 화장장으로 옮기며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화장장에 다다르자 한씨의 아내가 쓰러지듯 관을 껴안고 흐느꼈다.

한씨의 죽음이 안타까움을 더한 건 그가 먼 타국에서 숨지고도 한달여 동안 고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타국에 머물러야 했기 때문이다. 한씨는 지난 7월23일 이라크 공사 현장으로 출국했다. 세월호 잠수구조 작업으로 앓게 된 정신적 고통과 골괴사(혈액 공급이 되지 않아 뼈조직이 죽어가는 질환)로 잠수사 일을 그만뒀지만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은 그를 다시 잠수작업이 필요한 공사현장으로 가게 했다. 하지만 다시 마주한 바다는 그를 영영 데려가 버렸다. 한씨는 이라크에서 첫 잠수를 한 지 약 두달 뒤인 지난 9월25일 숨졌다. 공사업체 측은 “한씨가 잠수를 마치고 올라온 뒤 쓰러져 사망했다”고 유족에게 설명했다고 한다.

황망한 소식을 접한 아내가 홀로 이라크로 가서 남편의 시신을 확인했다. 그러나 한씨는 한국으로 바로 돌아오지 못했다. 현지 사정으로 인해 한씨의 시신은 한달여 늦어진 끝에 돌아왔고 지난 2일 빈소가 차려졌다.

2014년 세월호 참사는 한씨 인생의 항로를 바꾼 사건이었다. 민간잠수사였던 그는 참사 소식을 듣자마자 현장으로 뛰어갔다. 당시 서른아홉, 결혼을 한 달 앞둔 늦깎이 예비신랑이었다. “가지 말라”는 신부의 호소를 뒤로 하고 맹골수도로 뛰어들었다. 한씨는 부부로 보이는 사람들, 같은 교복을 입은 한 반 친구들의 시신을 직접 건져올렸다. 그 중엔 떨어지지 않으려는 듯 구명조끼 끈으로 서로를 묶은 아이들도 있었다. 세월호 잠수사들의 이야기를 엮은 책 <나는 세월호 잠수사다>에서 한씨는 “묶인 끈을 잘라낼 때마다 생이별을 시키는 것처럼 마음이 아팠다”고 했다.

“수고했고, 실종자 가족이 물 속 상황을 듣고 싶어하니, 가서 얘기해줘라.”

지난 4월 참사가 10년을 맞았지만 한씨는 여전히 세월호를 떠나지 못했다고 한다. 동료들은 한씨가 10년 전 그 날들을 잊지 못하고 괴로워했다고 전했다. 실종자 수습을 함께 했던 동료 A씨는 “한씨도 저도 서로 엮인 시신들을 풀어 안고 나올 때가 가장 힘들었다”며 “술을 마시면 한씨가 그때를 떠올리며 눈물을 흘렸다”고 말했다. 세월호 잠수사 황병주씨(65)는 “반년 전 마지막으로 통화했을 때도 아직 많이 힘들다고 얘기했었다”고 했다.

세월호 민간 잠수사 고 한재명씨의 유족·동료 등이 4일 오전 한씨의 발인식에서 화장장으로 향하고 있다. 이예슬 기자 사진 크게보기

세월호 민간 잠수사 고 한재명씨의 유족·동료 등이 4일 오전 한씨의 발인식에서 화장장으로 향하고 있다. 이예슬 기자

세월호 참사를 넘어왔지만 현실의 삶은 더 고달팠다. 잠수사 일을 그만두고 참치집을 운영하는 등 생계를 위해 여러 일을 했지만 잘 풀리지 않았다. A씨는 “이라크로 가기 전에도 잠깐씩 국내에서 잠수사 일을 했다”며 “국내에서 일자리를 구하기 어렵다 보니 생계를 위해 해외로 나간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동료 잠수사들은 “여전히 세월호 잠수사는 국내에서 일을 구하기 어려운 실정”이라고 했다. 잠수병이나 트라우마 등 10년 전 세월호에서 입은 상흔은 일자리에서 환영받지 못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한씨는 ‘잘 살아보자’는 의지가 강했다. A씨는 “한씨가 참치집을 할 때도 정말 열심히 하고 뭐든지 열심히 했다”며 “정신과 입원 치료도 받고 살아보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빈소를 찾은 이들은 생전 한씨의 따뜻함과 책임감을 떠올리며 명복을 빌었다. 황씨는 “여리고 따뜻한 사람이었고 나를 잘 따라주는 동생이었다”며 “이제는 고통받지 않았으면 한다”고 했다. A씨는 “세월호 구조·수습 당시 힘들어 하면서도 다이빙을 할 때면 습관처럼 ‘아이들이 저를 지켜주겠죠. 뭐’라고 말하곤 했다”며 “너무 고생했으니 거기서는 편했으면 한다”고 했다.

한씨 등 세월호 잠수사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로그북>의 복진오 감독은 ‘한씨는 어떤 사람이었냐’는 질문에 아무 말 없이 한씨가 실종자를 수습할 당시 적은 일기를 보여줬다. 일기에는 피맺힌 심정으로 자신의 입을 바라보는 유족에게 안타까운 소식을 전해야 하는 괴로움이 담겨있었다. “저편에 열 명 돼 보이는 실종자 가족이 보인다. 그들에게 다가간다. 그들의 충혈된 애타는 눈빛을 보니 내 눈시울도 젖어온다. 어찌 얘기를 해야 될런지.” 이제 한씨는 현실의 아픔을 뒤로 하고 다시 바다로, 아이들 곁으로 돌아갔다.

고 한재명씨가 생전 세월호 실종자 수습 당시 적었던 일기. 복진오 감독 제공

고 한재명씨가 생전 세월호 실종자 수습 당시 적었던 일기. 복진오 감독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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