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 의지 내비치면서도 불편한 자리는 회피만 ‘모순된 행보’
총리 입 빌려 ‘예산안 조속 확정’ 협조 요청…진정성에 의구심
윤석열 대통령이 4일 국회 예산안 시정연설에 불참하면서 ‘마이웨이’ 기조를 재확인했다. 윤 대통령은 제22대 국회 개원식에 민주화 이후 처음으로 불참한 데 이어, 국회 예산안 시정연설에는 11년 만에 불참하는 기록을 다시 썼다. 지지율 하락, 김건희 여사 논란, 윤 대통령 자신의 공천개입 의혹 등 부정적 이슈가 이어지고 있지만, ‘불편한 자리에는 가지 않겠다’는 뜻을 다시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이 시정연설에 참석할 수 없는 이유로 최소한의 예우가 없는 야당 의원들을 들고 있다. 야당 의원들은 윤 대통령이 국회에 가면 소리를 지르고 팻말을 들고 시위를 할 것이 예상되는데 굳이 정쟁의 장을 만들 필요가 없다는 취지다. 국회가 민생에 도움 되지 않는 정쟁만 일삼는다는 대통령실 인식이 반영된 것으로도 보인다.
윤 대통령의 시정연설 불참은 국회의 협조를 얻어 4대 개혁을 추진하겠다는 의지와 모순된 행동이다. 시정연설에 불참한 윤 대통령은 한덕수 국무총리가 대독한 연설문을 통해 4대 개혁 과제 이행에 협조해달라고 국회에 당부했다.
윤 대통령은 연설문에서 연금개혁과 관련해 “국회 논의 구조가 조속히 마련돼 빠른 시일 내 사회적 대합의가 이뤄지고 법제화가 되길 기대한다”고 했다. 그는 또 “정부와 국회, 국민이 한마음이 되어 일치된 노력을 펼쳐야만 인구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다”며 인구전략기획부 출범을 위한 정부조직법 등 관련 법안의 조속 처리도 당부했다. 예산안을 법정 시한 내 확정해달라고도 했다. 하지만 시정연설 불참으로 협조 요청의 진정성은 의심받게 됐다.
국회 무시 기조가 이미지로 고착화된다는 점도 윤 대통령에겐 부담이다.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은 지난 4월 총선 압승으로 민의를 얻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계속해서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로 야당의 법안 통과를 저지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윤 대통령은 국회를 찾는 일정을 계속 거부하고 있다.
대통령이 국회 시정연설을 직접 하지 않은 것은 2013년 이후 11년 만이다. 노무현·이명박 전 대통령은 임기 첫해에만 직접 연설을 했고 박근혜·문재인 전 대통령은 매년 시정연설을 했다. 임기 초 “의회주의가 민주주의의 본질”이라며 의회주의자를 자처한 윤 대통령은 지난 9월2일 제22대 국회 개원식에도 불참했다.
여당 내에서도 비판이 나왔다. 한동훈 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아쉽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친한동훈(친한)계인 배현진 의원은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국회 개원식에 이어 두 번째로 국회를 패싱하는 이 모습이 대다수 국민의 눈에 어떻게 비칠지 냉철하게 판단했어야만 한다”며 “이해할 수 없는 정무적 판단”이라고 했다.
한 국민의힘 관계자는 통화에서 “불편한 장소는 못 가겠다는 것 아니냐”며 “국회에 와서 돌을 맞으면 지지율이 오히려 오를 텐데 왜 안 오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한 국민의힘 중진 의원은 통화에서 “윤 대통령은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라며 “아직은 그만큼 절박하지 않다는 의미”라고도 말했다.
한 영남권 초선 의원은 “대다수 여당 의원들이 비슷한 생각인 것 같다”며 “이해는 하지만 아쉽다는 반응”이라고 전했다.
친윤계 사이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한 친윤계 의원은 “대통령이 왔으면 좀 더 국민들에게 현재 처해 있는 상황의 어려움을 말씀하면서 어떻게 위기를 극복할 것인지, 또 우리의 성과를 훨씬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은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