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세요, 당신의 투표는 비공개입니다.”
5일(현지시간) 치러지는 미국 대선을 앞두고 백인 여성 유권자 표심이 승패를 가를 막판 최대 변수로 부상한 가운데 민주당이 ‘히든 해리스(Hidden Harris·숨겨진 해리스 지지자)’ 공략에 적극 나서고 있다. 공화당 강세 지역 공공 화장실 등에선 여성 유권자들에게 민주당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지지를 호소하는 쪽지가 조용하게 확산하고 있으며, 보수 표밭 여성 유권자의 ‘소신 투표’를 독려하는 광고도 제작됐다.
민주당이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자를 파트너로 둔 백인 여성들을 적극 공략하자 보수 진영은 “이간질”이라며 발끈했다.
3일 워싱턴포스트 보도에 따르면 ‘여성이 여성에게’라는 메시지를 담은 쪽지들이 전통적인 공화당 강세 지역과 경합주의 공공 화장실, 여성 탈의실 등을 중심으로 확산하고 있다. 이 “은밀한 캠페인”이 언제 어떻게 시작됐는지 기원은 불분명하지만, 대체로 “당신의 표는 비밀이고 당신의 파트너가 알 필요가 없다”는 내용으로 해리스 부통령을 뽑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자를 남편, 남자친구 등 파트너로 두고 있는 여성 유권자를 겨냥한 것이다.
여성이 해리스 부통령에게 소신 투표를 하자는 이 캠페인은 최근 광고로도 제작됐다. 30초 분량의 이 광고는 민간단체 ‘보트 커먼 굿(공익에 한 표를)’이 제작한 것으로, 트럼프 전 대통령 표밭인 백인 밀집 지역을 연상케 하는 투표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광고엔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자로 보이는 백인 남성과 함께 투표장에 온 여성이 기표소에서 다른 여성과 눈을 마주치고 미소 짓는 장면이 담겼다. 이 여성은 해리스 부통령 이름 옆에 기표한 뒤 “올바른 선택을 했느냐”는 파트너의 질문에 “물론이지 자기야”라고 답한다. 이어 해리스 부통령 지지를 선언한 유명 배우 줄리아 로버츠의 목소리로 “여러분은 원하는 대로 투표할 수 있다”며 “그리고 누구도 그것을 알 수 없을 것”이라는 내레이션이 이어진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부인 미셸 오바마 여사 등 유명 인사들도 보수 표밭 여성들의 소신 투표를 촉구하는 캠페인에 나서고 있다. 오바마 여사는 최근 미시간주 캘러머주 유세에서 “당신의 투표는 파트너의 정치적 견해와 상관없이 개인적인 문제”라며 해리스 부통령 지원 사격에 나섰다. 공화당원이면서 해리스 부통령을 공개 지지한 리즈 체니 전 하원의원도 “우리는 양심에 따라 투표할 수 있고 누구에게도 한마디도 할 필요가 없다”며 “11월5일 그렇게 할 공화당원이 수백만명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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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진영에선 격앙된 반응을 쏟아냈다. 친트럼프 성향 폭스뉴스의 간판 진행자 제시 워터스는 이런 캠페인이 “불륜이나 마찬가지”라고 힐난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를 선언한 청년 단체 ‘터닝포인트 USA’의 대표 찰리 커크는 이런 광고가 “미국 가족의 몰락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보수 성향 여성을 위한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를 운영하는 제이미 프랭클린은 “분열적이고 모욕적인 캠페인”이라며 “기혼 여성으로서 남편에게 거짓말을 하라고 홍보하는 해리스의 캠페인은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여성들의 선택을 무시하는 캠페인이란 비판도 나왔다. 보수 성향 잡지 ‘미국 보수주의자’의 편집장 대니얼 매카시는 “민주당을 공개 지지하지 않는 여성을 모두 허위의식이나 괴물 남편의 인질 취급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듯 광고가 격한 논쟁을 불러일으킨 것은 그만큼 초접전 양상인 이번 대선에서 보수 백인 여성의 표가 ‘스윙보터(부동층)’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2016·2020년 대선에서 연달아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줬던 백인 여성 유권자들이 이번엔 해리스 부통령 지지로 돌아설지가 선거 승패를 가를 중대 변수가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백인 여성은 전체 유권자의 약 30%를 차지하는 가장 큰 투표 인구 집단으로, 임신중지권 등의 이슈로 인해 이들의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가 종전보다 약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 선명수 기자 sms@kha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