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대선 후보로 출마한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이 대선 승복 연설을 위해 6일(현지시간) 오후 수도 워싱턴 북쪽에 있는 하워드대 교정에 마련된 무대 위로 들어섰다. 다소 굳은 표정을 한 지지자들의 시선이 일제히 해리스 부통령에게로 쏠렸다. 해리스 부통령이 “우리가 원한 결과가 아니고 투표하면서 목표한 결과는 아니지만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하자 청중들 사이에서 박수와 탄식이 함께 터져 나왔다.
유서 깊은 흑인공립대학(HBCU)이자 자신의 모교 교정에 선 해리스 부통령은 공화당 후보였던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과의 통화에서 “정권 인수를 돕고 평화로운 권력 이양에 관여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미국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은 선거에서 패했을 때 그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이며, 이 원칙이야말로 민주주의를 군주제나 폭정과 구분 짓는다”고 말했다. 2020년 대선 패배에 불복한 트럼프 당선인을 겨냥한 발언이다.
그는 이어 “미국에서 우리는 대통령이나 정당이 아니라 헌법과 양심, 신에게 충성한다”며 “나는 이 선거 (결과)에 승복하지만 자유와 기회, 공정, 존엄을 위한 싸움에서의 패배는 인정하지 않는다. 최상의 미국을 반영하는 이상을 향한 싸움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고 말했다.
또한 청년층에게 특별히 할 말이 있다면서 “싸움에는 종종 시간이 걸리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이기지 못한다는 건 아니다”면서 “그런 적이 없었으므로 불가능하다는 말을 믿지 말라”고 했다. 대선 결과에 실망한 지지자들을 달래면서 내년 1월 재집권하는 트럼프 당선인에 대한 감시와 견제의 고삐를 늦추지 않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그는 연설 말미 트럼프 2기에 대한 우려를 염두에 둔 듯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암흑기로 접어든다고 느끼는 것을 안다”면서 “충분히 어두울 때라야 별을 볼 수 있다는 속담이 있다. 우리 하늘을 낙관주의와 믿음, 진실과 봉사로 빛나는 수십억개의 별빛으로 채우자”고 말했다.
해리스 부통령이 낙관적인 톤으로 연설을 끝맺었지만 지지자들의 분위기는 가라앉아 있었다. 기자가 말을 건 시민 대여섯명은 “아직 결과를 곱씹는 중이다”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다”며 인터뷰를 사양했다. “미국을 위해 기도할 때”라는 짧은 말만 남기고 자리를 뜨는 이들도 여럿이었다. 눈물을 글썽인 채로 승복 연설을 지켜보거나, 자원봉사자들끼리 서로 끌어안고 위로하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이 대학 졸업반 남학생인 스펜서 토머스는 개표 결과에 실망했다면서도 “놀라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유를 묻자 “흑인 여성이 백인 남성을 상대로 겨룬 대결이어서 처음부터 불리했다”면서 “언젠가 그 장벽이 무너지는 날이 오면 나도 그 자리를 지킬 것”이라고 말했다.
지지자들은 트럼프 2기에 대해 “미국을 더 분열시킬 것” “가드레일 없이 폭주할 것”이라며 우려를 보였다. 미등록 이주자들을 지원하는 한 아시아계 여성 변호사는 트럼프 1기보다 더욱 강경하게 강제추방 조치 등을 실행할 것으로 우려한다면서 “내 고객들이 지금 어떤 심정일지 헤아리기조차 힘들다”고 말했다. 소아과 의사인 60대 백인 여성은 “미국이 뒷걸음질 치지 않기를 바라지만 솔직히 걱정된다”면서도 “투표권과 금권정치 퇴출을 위해 오랫동안 싸웠던 것처럼 민주주의를 회복하는 데도 긴 시간이 걸릴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