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조달러 걸린 기후협약총회 4일 뒤 개막, ‘누가 얼마 낼지’가 쟁점

김기범 기자
지난달 31일 아제르바이잔 수도 바쿠에 오는 11일부터 열리는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를 알리는 광고물이 설치돼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달 31일 아제르바이잔 수도 바쿠에 오는 11일부터 열리는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를 알리는 광고물이 설치돼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개막 전부터 ‘6조달러’가 걸린 ‘금융COP(당사국총회)’로 불리고 있는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 개막이 4일 앞으로 다가왔다. 새로운 기후재원 조성과 개도국에 대한 공여 책임 부여 등의 핵심 의제를 둘러싼 개도국과 선진국의 갈등,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당선이 국제사회의 기후대응에 미칠 영향 등이 최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7일 국제기구와 전문가, 시민단체 등에 따르면 오는 11일부터 22일 사이 아제르바이잔 수도 바쿠에서 열리는 제29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9)에서는 ‘신규기후재원 조성 목표’(NCQG·New Collective Quantified Goal) 설정을 둘러싼 선진국과 개도국·저개발국 등의 갈등이 쟁점으로 떠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 재원은 주로 저개발국, 개도국의 기후 대응에 쓰이게 되는데 기후변화에 있어 역사적 책임이 큰 선진국들이 부담하게 된다. 이로 인해 누가 얼마를 낼 것인지를 두고 선진국과 개도국, 저개발국 사이에 이견이 큰 상황이다. 선진국들은 기존에 이미 1000억 달러 넘는 재원을 마련했다고 주장하지만, 개도국들은 이 금액이 과잉 추계됐다고 주장한다. 또 개도국들은 선진국들에 앞으로 공공부문에서 1조달러(약 1392조6000억원), 민간재원으로 5조달러(약 6963조원) 내놓으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선진국들로서는 이처럼 막대한 금액의 공여를 쉽게 받아들이기는 힘든 것이 사실이다.

개도국들과 국제환경단체 등은 부유세와 화석연료 단속 등을 통해 재원 마련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지난달 24일 오일체인지인터내셔널이 발표한 연구결과를 인용해 세계적인 부자들에 대한 부유세와 화석연료에 대한 보조금 지급 중단, 금융거래세 등을 통해 연간 5조달러의 재원을 전 세계에서 마련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보도했다.

이처럼 이견이 큰 상황이지만 NCQG라는 새로운 기후 재정 목표를 세워야 한다는 것을 부인하기는 어렵고, 선진국 입장에서도 재원을 더 내놓아야 하는 것만은 분명한 상황이다. 이에 따라 누가, 얼마큼, 언제 재정을 부담하게 될 것인지가 이번 당사국총회 협상의 초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상황에 대해 전 세계 기관투자자들로 이뤄진 ‘기후변화에 관한 기관투자자 그룹(IIGCC)’은 이번 당사국총회가 ‘The Finance(금융) COP’라는 타이틀을 얻게 될 것이라면서 “NCQG는 개발도상국의 기후 행동을 가속화하기 위한 재정을 동원하는 데 필수적”이라고 설명했다. 개발도상국이 기후 변화를 완화하고 적응하며 저탄소 및 회복력 있는 경제로 전환할 수 있도록 자원을 조달하는 방법이 될 것이라는 얘기다.

지난달 31일 아제르바이잔 수도 바쿠에 오는 11일부터 열리는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까지 10일이 남았음을 알리는 카운트다운 장치가 설치돼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달 31일 아제르바이잔 수도 바쿠에 오는 11일부터 열리는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까지 10일이 남았음을 알리는 카운트다운 장치가 설치돼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번 총회에서는 이집트, 아랍에미리트, 아제르바이잔까지 3회 연속 산유국에서 총회가 열리는 것도 관전포인트로 꼽힌다. 지난해의 경우 산유국인 아랍에미리트가 의장국으로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물의를 일으킨 바 있기 때문에 더욱 관심이 커지는 부분이다. 내년 당사국총회가 열리는 브라질 역시 산유국이기도 하다.

화석연료 비확산 조약 이니셔티브의 글로벌 디렉터인 하지트 싱은 온라인 기자 간담회에서 “개발도상국들은 연간 최소 1조 달러의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면서 “기존의 선진국뿐 아니라 중국, 중동, 인도 등과 G20국가 들에 재원을 공여하도록 압력을 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존에 기후재원 마련에 있어 책임이 덜했던 한국 역시 1조+5조 마련에서 부담을 안게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당선에 대해 기후분야 해외 전문가들은 우려의 목소리를 내면서도 2017년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 뒤 기후협약을 탈퇴했던 때와는 상황이 다르고, 국제적인 흐름을 완전히 거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알렉스 스콧 국제 싱크탱크 ‘ECCO’의 기후외교 선임고문은 “이번에는 트럼프가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자체에서 탈퇴하겠다는 신호를 보낼 수도 있다”면서 “이는 법적 소송에 휘말릴 가능성이 있고, 해결까지 몇 년이 걸릴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다만 그는 “트럼프는 2025년에나 취임할 예정으로, 이번 당사국총회에서 미국을 대표하는 것은 바이든 행정부”라며 “트럼프 행정부가 기존에 미국이 약속한 재원을 공여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극복할 수 없는 문제는 아니고, 금융 협정은 미국에만 달린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영국 임페리얼칼리지 런던의 기후과학자 프리데리케 오토는 “세계는 트럼프가 마지막으로 권력을 잡았을 때와는 매우 다른 위치에 있다”라며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이 전례 없는 속도로 진행되고 있고, 미국 정부가 할 수 있는 어떤 일도 재생에너지가 석유, 가스, 석탄보다 저렴하고 신뢰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바꾸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트럼프가 기후변화를 부정하더라도, 물리학의 법칙은 정치에 신경 쓰지 않는다”면서 “세계가 화석연료를 태우는 한 극한 기상 현상은 미국에서 계속해서 악화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린다 칼처, 유럽 기후외교 싱크탱크 ‘전략적 시각’ 이사는 “트럼프의 화석연료 집착은 세계 시장의 트렌드를 무시한 것”이라며 “이는 그에게 투표한 사람들의 일자리를 위험에 빠뜨리고, 막대한 투자에도 불구하고 수익을 내지 못할 좌초 자산을 초래할 위험이 있다”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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