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기 위해 죽도록 일했던 흑인들의 저항 수단 ‘낮잠’

이영경 기자

휴식은 저항이다-트리샤 허시 지음 | 장상미 옮김 갈라파고스 | 212쪽 | 1만7000원

[책과 삶]살기 위해 죽도록 일했던 흑인들의 저항 수단 ‘낮잠’

2017년 5월의 어느 일요일, 미국 애틀랜타에서 ‘집단 낮잠 체험’이라는 행사가 열렸다. 신학대 졸업반이던 흑인 여성 트리샤 허시가 기획한 행사였다. 돈은 없고, 가족은 아프고, 투잡 스리잡을 뛰며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된 허시에겐 휴식이 절실했다. 행사에 일면식도 없는 40명의 사람이 몰렸다. ‘낮잠사역단’의 출발이었다. 허시는 ‘낮잠의 주교(Nap Bishop)’로서 미국 전역에서 ‘휴식은 저항이다’ 운동을 이끌었다.

수익을 위해 밤낮없이 일할 것을 요구하는 ‘과로사회’를 비판하는 글들은 많다. 허시의 문제의식도 이의 연장선상에 있지만 인종차별이라는 렌즈를 더한다. 인종차별이 극심한 미국에서 흑인 여성으로 살아온 허시는 ‘과로문화’의 원인으로 자본주의에 더해 백인우월주의를 지목한다.

미국에 사는 흑인들 대부분의 조상들이 그렇듯 허시의 조상도 노예 출신이었다. 허시는 자신의 할머니가 고된 노동과 육아에 지칠 때면 잠시 눈을 감고 쉬던 모습을 떠올린다. 허시는 농장에서 강제노동을 하다가 죽어간 노예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일하기 위해 고통과 건강 이상을 무시하라고 강요하는 자본주의”를 떠올린다.

그러기에 “휴식은 저항이다”라는 말은 급진적이고 전복적인 선언이다. ‘낮잠’이라는 부드러운 단어를 쓰고 있지만, 허시는 그것이 자본주의와 백인우월주의에 대항하는 수단이라며 “급진적 공동체 돌봄에 관한 작업”이라고 말한다.

시인이자 공연예술가이기도 한 허시에게 ‘낮잠사역단’은 예술적인 삶의 실험이기도 하다. 선언적이며 시적인 언어가 모호하고 장황하게 들려 잠이 솔솔 오다가도 정곡을 찌르는 사회비판적 메시지에 정신이 번쩍 들기도 한다. “우리 몸은 미국이 가진 최초의 자본이었고, 그로 인해 휴식과 꿈의 공간을 끊임없이 탈취당했다” “수면부족은 인종적, 사회적 정의의 문제”와 같은 문장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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