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 그리고 삶과 죽음…‘연결’의 발견

박송이 기자
황여정 작가는 <숨과 입자>를 출간했다.

황여정 작가는 <숨과 입자>를 출간했다.

숨과 입자|

황여정 지음|창비|252쪽|1만6000원

중소기업 광고 디자이너 이수는 대기업으로의 이직을 목표로 열의를 다해 일에 매진한다. 이수가 좇는 또 다른 목표는 세련되고 산뜻한 “퍼스널 라이프 스타일”을 갖는 것이다. 이수는 그러한 라이프 스타일을 만들기 위해 ‘강한 멘탈’ ‘높은 자존감’ ‘확고한 생활원칙’을 구축해 나간다. 이수는 자신의 “발전적”인 삶에 자부심을 느낀다.

그러던 어느 날 이수는 엘리베이터에 갇히는 사고를 겪고 지독한 번아웃 증상에 시달린다. “발전적”이라고 생각했던 삶이 사실은 끝없는 생존경쟁에 다름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는 일을 그만둔다. 갈피를 잡지 못하는 이수에게 동생 이영은 포르투갈 여행을 권하고 이수는 그곳에서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된다.

포르투갈 여행에서 이수는 우연히 아드리아나가 운영하는 요가원을 찾게 된다. 아드리아나가 이끄는 대로 요가의 호흡에 집중한 이수는 어느 순간 내면의 환희를 목도하게 된다. “자신도 모르게 자기와 동일시된 감정과 생각들로부터 분리되어 좀 더 근원적인 자아와 연결됨으로써 체험되는 일체감”이었다. 이수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느낀다.

황여정 작가의 장편소설 <숨과 입자>는 ‘연결’에 대한 감각을 갱신하는 소설이다. 이때의 연결은 나와의 연결이기도 하고 타자 혹은 세계와의 연결이기도 하다. ‘나’와의 연결은 타자를 통해 발생하기도 하고, 타자와의 연결이 나와의 연결을 경유해 일어나기도 한다. 1부가 이수가 아드리아나의 만남을 통해 ‘근원적 나’와의 연결을 경험하는 이야기라면 2부는 이수의 동생 이영의 이야기다. 이영은 다큐멘터리 감독 길병소와 가진 몇차례의 인터뷰, 보스니아 여행에서 만난 루카와의 대화를 통해 자신의 내면과 그 내면에 숨어 있던 친구 ‘승아’의 존재를 발견하게 된다.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연결’은 공허하고 강박적인 슬로건에서 탈피해 생명력을 지닌 생생한 감각으로 다가온다.

<숨과 입자>. 창비 제공

<숨과 입자>. 창비 제공

어느 날 이수의 요가원에 한 여성이 찾아온다. 그는 자신이 요가원 옆 건물 원룸에 살다 사망한 길병소의 연인이라고 밝히며 길병소의 유품에서 발견했다는 책을 내민다. 책은 이수가 포르투갈에서 사온 시집이었고, 책 속지에는 “이 책의 시들을 번역해보세요. 놀라운 일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도이영”이라고 쓰여 있었다. 이수는 동생 이영의 이름에 놀라며 어떻게 이 책이 길병소를 거쳐 자신에게 되돌아왔는지를 추적한다.

영화감독 지망생이었던 길병소는 점점 망가지는 세상과 무기력한 자신 사이에서 냉소하다 어느날 외주로 교회의 홍보 영상을 제작하게 된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고난”을 받는 성경 속 인물 ‘욥’에 대한 한 목사의 설교를 듣게 된 길병소는 이후 ‘욥기’에 천착한다. 그는 ‘무고한 자’란 누구이고 ‘무고한 자를 위한 기도’의 내용은 무엇인지를 탐구하는 다큐멘터리를 만들기로 결심하고, 검색 끝에 이영이 일하는 ‘욥 기도원’에 찾아와 이영에게 인터뷰를 요청한다.

이영과 길병소는 다섯 차례 인터뷰를 위해 만난 후 연락이 끊긴다. 그로부터 2년 후, 이영은 길병소가 메일로 보내준 영상을 통해 자신이 기도하게 된 이유가 특성화고를 다니다 현장실습을 나간 공장에서 산재로 세상을 떠난 친구 승아 때문이었다는 걸 또렷이 자각하게 된다. 이영은 자신이 진정 원했던 것은 교회라는 믿음의 형식이 아니라 신에게, 승아에게 닿고 싶은 지극한 마음이라는 걸 깨닫는다. 길병소는 이영에게, 이영은 승아에게 가 닿으며 그렇게 또 연결이 일어난다.

소설은 삶과 죽음, 애도를 통해 연결의 감각을 상기시킨다. 보스니아의 주택가 한복판에 있는 공동묘지에서 이영은 “나는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니라 살아남은 사람이다” 말을 체감하고, 졸속으로 진행된 특성화고 신설에 대해 이영이 여행지에서 만난 루카는 “하나의 제도가 뿌리를 내리는 데는 사회 전체가 공력을 들여야 하는 법”이라고 말한다. 이는 무수한 죽음과 사회적 참사를 떠올리게 하며 모든 죽음에 모든 삶이 조금씩 연루되어 있다는 감각을 끌어낸다. 이 연결감은 16만8000년 전에 폭발한 초신성의 빛이 1987년에 지구에 도착했다는 소설 속 이야기처럼 자연스러우면서도 놀라운 발견이다.

극 중 등장인물인 아드리아나는 말한다. “나는 진정한 연결을 원해. 내가 진짜로 누구이고 네가 진짜로 누구인지 알아가는 과정을 통해서.” 소설 후반부는 나를 향해 동시에 타인을 향해 나아가려는 등장인물들의 마음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었는지를 풀어낸다. 여기에 종교적·철학적 질문들이 현학적이지 않고 사려 깊게 배치되면서 독자들을 이끈다. “와닿고 가닿기 위해서. 살아 있다는 건 그런 것이니까”라는 소설의 마지막 문장까지 읽고 나면 종교로 동여맬 수도, 돈으로 기획해낼 수 없던 ‘연결’의 감각이 새삼 깨어남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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