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2기

한국의 ‘4B’ 운동이 뭐기에···트럼프 당선 이후 미국서 관심 급증

김서영 기자

트럼프 당선 후 SNS에 소개 영상 퍼져

“한국 여성들처럼 4B 운동을 고려해야”

미 대선 후 한국의 4B 운동 유행을 소개한 가디언 기사. 가디언 갈무리

미 대선 후 한국의 4B 운동 유행을 소개한 가디언 기사. 가디언 갈무리

미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승리한 이후 미국 여성들이 한국 페미니즘의 ‘4B 운동’을 주목하고 있다. 미국의 젊은 여성 유권자가 이번 대선 결과를 자기 결정권과 재생산권에 대한 위협으로 받아들이며 저항에 나섰다는 해석이 나온다.

8일 현재 워싱턴포스트(WP), 가디언, NBC, CBS, 타임지, 인디펜던트 등 해외 언론은 대선 이후 미국 내에서 한국 여성들이 탄생시킨 4B 운동을 향한 관심이 급증했다고 보도했다.

4B는 네 가지 ‘비’(非) 실천을 뜻하는 것으로, 비연애·비섹스·비출산·비혼으로 구성된다. 2016년쯤 한국에서 페미니즘이 조류를 탄 이후 여성들의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확산했다. 이성애자 여성들이 남성과의 연애, 성관계, 결혼 등을 거부하자는 것이 골자다.

영어권 매체에서는 이를 ‘4가지 노(4 Nos)’, ‘4B 무브먼트(4B Movement)’ 등으로 번역해 소개했다. 인디펜던트는 ‘bihon’(비혼), ‘bichulsan’(비출산) 등 한국어 발음도 표기했다.

미 대선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 틱톡을 비롯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미국 여성들이 4B 운동을 소개하고 독려하는 영상이 퍼졌다. 한 틱톡 영상은 “여성들아, 이젠 모든 남성을 거부할 때다. 너희들은 권리를 잃었다. 4B 운동이 이제 시작된다”는 내용을 담았는데, 이 영상은 340만 조회수를 기록했다. 엑스(옛 트위터)에서도 4B 운동을 설명하고 “우리는 한국 여성들처럼 4B 운동을 고려해야 한다”고 밝힌 게시글이 ‘좋아요’ 약 47만개를 받았다. 가디언에 따르면 지난 6일 구글에선 4B 운동 검색량이 450% 급증했으며, 특히 워싱턴DC, 콜로라도주, 버몬트주, 미네소타주에서 검색량이 많았다.

미 대선 결과가 나온 지난 6일(현지시간) 워싱턴DC 하워드대에서 한 민주당 지지자가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의 패배 연설을 지켜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미 대선 결과가 나온 지난 6일(현지시간) 워싱턴DC 하워드대에서 한 민주당 지지자가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의 패배 연설을 지켜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한국의 4B 운동은 메갈리안과 여성혐오 ‘미러링’ 탄생,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 사건, 미투(나도 고발한다) 운동, 교제폭력, 성별 임금 격차, 불법촬영, 경력단절 등과 같은 한국적 맥락 위에서 탄생했다. 이러한 4B 운동이 미국에서까지 호응을 얻는 현상을 두고 미국의 여성 유권자가 이번 대선 결과를 자기 결정권과 재생산권에 대한 위협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임신중지권 축소를 옹호한 트럼프 당선인이 승리하는 걸 보면서 회의를 느꼈다는 것이다.

조지아주에 거주하는 미셸라 토마스(21)는 4B 운동이 “원인에는 결과가 따른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WP에 밝혔다. 그는 4B 운동을 알게 된 건 1년 전쯤이지만, 최근에 젊은 남성들이 트럼프 당선인에게 투표하는 것을 보며 관심이 커졌다고 했다. 토마스는 “젊은 남자들은 섹스를 기대하면서도 우리(여성들)가 임신중지를 하지 못하길 바란다. 그들은 둘 다 가질 순 없다”고 했다. 이어 “젊은 여성들은 여성의 권리를 위해 싸우지 않는 남성과 친밀하게 지내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들(남성들)이 우리를 존중하지 않는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미국의 보수 성향 주에 거주하는 케나(24)는 주말에 예정된 데이트를 취소했다고 가디언에 전했다. 그는 “이 나라에선 당신이 이성애 백인 남성일 때만 중요하게 취급된다. 이를 알게 되는 건 슬프다. 내 권리를 되찾을 때까지 남성이 내게 손대는 걸 허용하지 않겠다”고 가디언에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네바다주에서 선거 유세를 위해 무대에 오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네바다주에서 선거 유세를 위해 무대에 오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또한 극우·반페미니즘 성향 남성들이 트럼프 당선인을 지지하고, 당선인이 이에 호응한 것도 여성 유권자의 분노를 유발했다는 분석이 이어졌다. 백인 민족주의자 닉 푸엔테스가 선거 이후 임신중지권을 두고 “당신의 몸은 내 선택이다. 영원히”라는 글을 엑스에 올린 것이 대표적이다. 푸엔테스는 “이상적인 아내는 16살”이라고 주장하고 히틀러를 찬양한 인물로, 2022년 트럼프 당선인의 마러라고 리조트에 초대돼 함께 식사한 적이 있다.

가디언은 “이런 식의 폭력적인 표현은 현재 데이트 상대인 대부분의 젊은 미국 여성을 설득하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애리조나주립대 브레엔 파스 교수는 “젊은 여성들은 자신의 재생산권이 안전하다고 믿지 않기 때문에 자신의 권리와 몸에 대한 권한을 되찾기 위해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고 WP에 밝혔다.

인디펜던트는 한국과 미국의 성별 임금 격차, 친밀한 관계에서 살해된 여성 통계 등 유사점과 차이점을 언급하했다. 이어 “4B 운동을 하는 이들은 결혼을 여성에 대한 실존적 위협으로 보고 있다. 이들의 우려는 타당하다”며 “미국 여성이 4B 운동에 동참할지 아니면 트럼프 2기에 자신들만의 저항을 만들어낼지 질문이 제기된다”고 전했다.

지난 5일 치른 미 대선 출구조사에서 남성 유권자의 55%는 트럼프 당선인에게, 여성 유권자 53%는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에게 투표한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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