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 기업명 공개가 수사를 곤란하게 한다고요?

김지환 기자
일러스트 성덕환 기자

일러스트 성덕환 기자

“산업안전보건 행정사의 가장 큰 과오는 과거 발생한 중대재해로부터 충분한 교훈을 얻지 못했다는 것이다.”

고용노동부가 2022년 11월 말 발표한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에 적혀 있는 전문가 의견이다. 산업안전보건공단이 재해 원인을 조사해 노동부에 제출하는 ‘재해조사 의견서’가 공개되지 않아 동종·유사사고 예방을 위한 공적 자원으로 의견서가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노동부는 의견서 공개를 추진하기로 했다.

로드맵이 발표된 지 2년이 지났지만 의견서는 여전히 비공개다. 공개 근거를 담는 방식으로 산업안전보건법이 개정돼야 의견서 공개가 가능하다는 게 노동부 입장이다. 22대 국회에서 관련 법안이 발의됐지만 논의에 속도가 나지 않고 있다.

의견서 공개가 산재 예방을 위한 ‘심화 과정’이라면 중대재해 발생 기업명 공개는 ‘기초 과정’이다. 노동계와 시민사회단체는 2006년부터 매년 가장 많은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선정·발표하고 있다. 지난해 이 발표가 17년 만에 무산됐다. 노동부가 예전과 달리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의결 없이는 기업명 정보를 제공할 수 없다고 했기 때문이다.

노동부의 비공개 기조는 정보공개 청구 거부로도 이어졌다.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는 지난해 3월 노동부에 2022년 중대재해가 발생한 원·하청 기업명 정보를 공개해달라고 청구했다. 하지만 노동부는 ‘수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보’라는 이유로 거부했다. 정보공개센터는 이의신청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자 지난해 10월 정보공개 거부처분 취소소송을 냈다.

1심 법원은 지난달 17일 정보공개센터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정보가 공개되더라도 중대재해가 발생한 기업을 알 수 있을 뿐이고, 수사기관 내부에서 공유되는 구체적인 범죄 관련 정보나 수사 개시 또는 진행 정도 및 수사 방법 등이 공개되는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

재판부가 쟁점으로 다루진 않았지만 노동부는 기업명 공개가 피의사실 공표죄라는 항변도 했다. 하지만 노동부는 지난해와 올해 디엘이앤씨·현대제철·세아베스틸 등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대한 보도자료를 냈다. 이 보도자료는 그렇다면 피의사실 공표죄가 아니라는 것인지 노동부에 묻고 싶다.

노동부는 지난 7일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출근했다가 퇴근하지 못하는 노동자를 단 한 명이라도 줄이기 위해 노동부가 할 일은 항소가 아니라 중대재해 발생 기업명·재해조사 의견서 공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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