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1월 출범할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하에서 세계 질서를 규정할 가장 큰 변수는 미·중관계이다. 트럼프 시대에는 많은 것이 불확실하지만, 미·중 갈등이 더 심해지리라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대중국 견제는 미 정치권에서 드물게 초당적 합의가 이뤄져 있는 사안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중국산 수입품에 60% 고율 관세를 부과하는 등 강한 보호무역주의 기조를 밝힌 바 있다. 첨단기술 공급망 분리, 대만 문제는 경제·군사 안보 측면에서 갈등 요인이다. 중국과 경쟁하면서도 안정된 관계를 추구해온 바이든 정부 때보다 더 불안정한 세계를 예상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한국에도 고민거리이다. 한국은 미국과의 동맹을 국제관계의 중요한 자산으로 삼으면서도 중국과도 잘 지내야 하는 위치에 있다. 하지만 한·미관계는 최상인 반면 한·중관계는 최저점에 머물러 있다. 주한 중국대사는 싱하이밍 대사 이임 후 4개월 동안 공석이고, 중국의 단기비자면제 조치 발표를 정재호 주중 한국대사도 몰랐을 정도로 ‘식물대사’ 체제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 한·중관계 현주소이다. 한·중 간 전략적 소통은커녕 일상적 소통조차 제대로 이뤄지는지 의문이다. 이는 윤석열 정부가 실리가 아닌 이념의 관점에서 바이든의 대중국 견제에 과도하게 참여하며 비롯된 측면이 크다.
트럼프의 강도 높은 ‘중국 때리기’가 시작될 경우 한국은 어떤 입장을 취할지 고민해봐야 한다. 이것은 트럼프의 터무니없는 방위비 분담금 요구 같은 돈 문제 차원을 넘어서는 근본적인 외교안보 정책 방향에 관한 문제이다. 우선 염두에 둘 것은 미국이 바로 그 미·중 경쟁 때문에라도 주한미군을 철수할 수 없다는 점이다. 주한미군은 북한 위협 대응뿐만 아니라 미국의 대중국 견제 수단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동맹에 대한 거래적 관점에서 보더라도 이것은 한국이 가진 자산이라는 점에서 좀 더 자신감을 갖고 임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위험 분산과 전략적 자율성이다. 윤석열 정부의 전반기 외교안보 기조는 외교안보 자원을 한·미 동맹이라는 한 바구니에 투자함으로써 위험을 분산하지 못했고, 전략적 자율성을 줄이는 방향으로 움직였다는 점에서 문제였다. 위험 분산과 전략적 자율성 확보를 위해서는 한·미 동맹 자체를 목적으로 보는 이념적 태도를 버려야 한다. 동맹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