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개혁 정부안이 발표된지 두 달이 지났지만 국회 논의가 첫발도 떼지 못하면서, 연내 처리가 물 건너간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여야 간 협의는 단 한 차례도 열리지 않았고, 개혁안을 다룰 협의체 구성부터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연금개혁을 위한 마지막 골든타임마저 놓칠 것이라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단기적으로 합의점을 찾을 수 있는 부분부터 여야가 논의에 착수해야 한다고 촉구한다.
여당 “특위” 야당 “복지위” 논의 협의체 구성부터 난항
11일 국회 복지지위원회 관계자 등의 말을 종합하면 여야는 연금개혁을 논의할 협의체 구성부터 진도를 나가지 못하고 있다. 정부·여당은 국회 연금 특별위원회(연금특위)등 별도 협의체를 만들어 논의를 하자는 입장인 반면, 야당은 보건복지위원회 산하 소위원회 협의를 주장하고 있다.
복지위 여당 관계자는 “협의체가 먼저 정해져야 한다”며 “구조개혁까지도 포함시켜서 큰 틀을 합의할 수 있는 협의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반면 야당은 정부 개혁안에서 지적되는 부분을 수정해 새로운 안을 만들어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국회 복지위 소속 더불어민주당 관계자는 “정부가 근거도 제대로 갖추지 않고 한번도 도입한 적 없는 안을 가지고 왔기 때문에 논의할 수 없다”며 “논의를 하려면 정부가 다른 안을 제출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는 애초 정부안이 확정안이 아닌만큼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국회에서 논의하면 된다는 입장이다. 복지부 고위 관계자는 “자동조정장치는 국회에서 논의하면 다시 다양한 안을 얘기한다고 했고, 세대별 차등 보험료도 조정 가능성이 열려 있다”며 “정부안대로 확정돼야 한다고 주장한 적 없다. 새로운 안을 만들라는 건 비현실적”이라고 말했다.
지난 9월4일 정부가 발표한 연금개혁안의 핵심은 보험료율(내는 돈)을 현행 9%에서 13%로 인상하고, 소득대체율(받는 돈)을 40% 에서 42%로 올리는 것이다. 여기에 재정 안정화를 위해 자동조정장치 도입하고 세대별 차등 보험료 인상안을 담았다.
야당은 자동조정장치와 세대별 차등 인상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본다. 자동조정장치는 궁극적으로 ‘연금 삭감’을 부르고, 차등 인상은 사회보험 기본 원칙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보건복지위 소속 민주당 의원은 “21대 국회에서 특위 운영하고 공론화 위원회를 거쳐 거의 합의에 이른 사안을 윤 대통령이 엎은 상황에서 다시 특위를 만든다는 건 어불성설”이라며 “특위 구성을 서두를 필요는 없고, 당장 모수 개혁부터 논의하려면 복지위에서 논의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현재 여야 지도부 간 물밑 협상은 이뤄지고 있지만 여야간 입장차가 커 빠른 합의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연내 처리가 무산되고 내년 상반기까지 여야 간 협의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연금개혁은 또 다시 좌초될 가능성이 높다.
“마지막 골든타임… 국회 책임감 갖고 논의해야”
국회도 미래 세대 부담을 줄이기 위해 연금개혁을 신속히 처리해야 한다는 전제에는 이견이 없다. 최근에는 복지위에서 먼저 모수개혁을 다루고, 전반적인 구조개혁은 별도 연금특위를 구성해 장기 논의하자는 절충안도 나오고 있다.
21대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에서 민간자문 공동위원장을 맡았던 김용하 순천향대 교수는 “이미 나와있는 정부안과 기존 논의 사항들을 포괄해서 단기적으로 할 수 있는 것부터 국회가 결론을 내려야 한다”고 했다. 김 교수는 “협의체는 중장기적인 과제를 중심으로 할 수 있게 추진하고, 단기적으로 할 수 있는 건은 복지위에서 하면 된다”며 “모수개혁은 거의 종착점에 다다른 상태라, 여야가 합의할 수 있는 부분부터 합의하고 구조개혁을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석재은 한림대 교수(사회복지학)는 “연금개혁에 대해 진짜 책임감을 갖고 있는 정치인이 얼마나 있는지, 이 사안의 무게를 알고 정말 해야된다는 의지를 가진 정치인이 얼마나 있는지 알고 싶다”며 “정부 안은 얼마든 조정의 여지가 있는데도, 정부 탓을 하면서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정말 무책임한 행위”라고 했다. 석교수는 “지금 개혁하지 않으면 미래 세대가 감당해야 할 부담이 더 커진다”며 “지금은 그냥 말로만 골든타임이 아니라 마지막 남은 골든타임”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