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삼성전자 기흥공장에 입사한 유모씨(47)는 난소암과 대장암(구불결장암)을 얻었고, 2010년 출산한 자녀는 자폐스펙트럼장애 판정을 받았다. 자녀 돌봄을 위해 퇴직한 뒤 동료들을 만난 어느 날, 유씨는 자신의 병과 자녀의 장애에 근무환경이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됐다.
유씨와 반도체 3라인에서 함께 일하고 출산시기도 비슷했던 동료들의 자녀 중 발달장애나 희귀질환을 앓는 자녀가 5명이었다고 했다. 현재 재직 중인 친구는 대장암을 앓고 있었다. 한 후배는난소암으로 숨졌고, 같은 조 후배 2명은 뇌종양과 림프종으로 투병했다.
유씨가 일했던 반도체 3라인은 벤젠 등 독한 화학물질을 매일 직접 대면하는 작업이었다. 반도체 직업병을 세상에 알린 고 황유미씨가 일한 곳이기도 했다. 유씨는 회사와 기숙사만 오가며 열심히 일했고 능력을 인정받아 관리자까지 올랐다.
1991년부터 기흥사업장 2·3·4라인과 화성사업장에서 일한 A씨(50)의 첫째도 지적장애를, 둘째는 경계성지능장애 판정을 받았다. A씨도 유씨처럼 퇴직 후 동료들과 이야기하다 이상한 점을 느꼈다. “이상하게 아픈 자녀가 많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때서야 반도체와 LED의 열악한 환경에서 근무한 게 아이에게 나쁜 영향을 줬을까 의심할 수 있었습니다.”
A씨는 자신이 일한 LED 공정이 “첨단과는 거리가 먼 대장간에 가까웠다”며 “맨손으로 웨이퍼를 분리하거나 계면활성제로 세정하고, 아무 보호구 없이 수작업으로 형광체를 배합했다”고 했다.
유씨와 A씨, 난소암으로 숨진 고 이모씨의 유족 등 삼성전자 반도체·LED 노동자들이 11일 근로복지공단에 산재를 신청했다. 유씨와 A씨 자녀들의 건강손상에 대해서도 함께 산재신청을 했다.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은 이날 오전 서울 영등포구 공단 서울남부지사 앞 도로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와 삼성은 지금이라도 LED라인 피해자 상황과 열악한 작업환경에 대해 조사하고 사과해야 한다”고 했다.
이들은 태아의 건강 이상도 산재를 따져볼 수 있게 한 ‘태아산재법’의 적용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고도 했다. 2023년 시행된 태아산재법은 법 시행 3년 이내 태어났거나 산재신청을 한 자녀에게 소급 적용되지만, 유씨와 A씨의 자녀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 생식독성으로 인한 자녀의 질병·장애는 뒤늦게 발견될 수밖에 없는데 소급적용 기간을 짧게 두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이들은 주장했다.
박다혜 법률사무소 고른 변호사는 “(자녀의 질병·장애를) 뒤늦게 알게 되거나 산재신청을 결심한 가족들은 사실상 산재보험 수급권을 차단하고 있다”며 “산재로 고통받는 가족을 나누고 차별하는 법을 당장 개정하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