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이시바 시게루 현 총리가 11일 특별국회에서 차기 총리로 다시 선출됐다. 총선 격인 중의원(하원) 선거에서는 지난달 ‘참패’했으나, 머리 숙여 야당 협조를 얻어냈다. 다만 앞으로도 예산·정책 통과에 앞서 야당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이라 ‘식물 총리’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공영방송 NHK는 이날 “이시바 총리와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 노다 요시히코 대표가 결선투표를 치른 결과 이시바 총리가 선출됐다”고 전했다.
첫 투표에서 이시바 총리는 221표, 노다 대표는 151표를 각각 얻어 결선투표를 치르게 됐다. 총리 선거에선 과반 득표자가 선출되나, 없으면 상위 2명에 대해 결선투표를 다시 진행해 더 많은 표를 받은 사람이 총리가 된다. 결선투표 실시는 1994년 이후 30년 만으로 사상 5번째다. 결선투표 결과는 이시바 총리 221표, 노다 대표 160표였다.
이시바 총리와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 노다 대표 간 결선 투표는 예상됐던 바다. 참의원에선 여당이 과반이나, 중의원은 자민당·공명당 연립정권 의석 수가 총 215석으로 전체 465석 중 과반(233석)에 미치지 못해서다.
결선투표 결과를 가른 건 ‘캐스팅보트’인 일본유신회, 국민민주당 등 야당으로 분석됐다. 두 당은 총리 선거 1차 투표와 결선 투표 모두에서 자당 대표에게 투표하기로 당론을 정했다. 결선에서 두 후보자가 아닌 다른 사람이 적힌 표는 모두 무효가 되기 때문에, 사실상 다수당인 자민당 총재 ‘굳히기’로 해석됐다. 결선투표에서 무효표는 총 84표였다.
특히 국민민주당은 이날 다마키 유이치로 대표가 연하 여성 탤런트와 불륜을 저질렀다는 의혹이 제기됐으나, 현 대표 체제와 총리 선거 ‘무표효’ 전략은 모두 유지하기로 정했다고 마이니치신문은 전했다.
이시바 내각은 이날 오전 임시 각의(국무회의)에서 총사퇴했으나, 이시바 총리 재선출에 따라 이날 중 재출범할 예정이다. 총선에서 낙선한 자민당 농림수산상과 법무상, 공명당 몫인 국토교통상 등 3명은 교체되며, 관방장관과 외무상, 방위상 등 주요 각료는 유임될 것으로 보인다.
이시바 총리가 자리는 유지했지만 정치적 주도권을 갖기는 어려울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자민당은 경제 대책 등 성향이 그나마 비슷한 야당인 국민민주당의 주장을 정책마다 반영하는 ‘부분 연합’으로 정권을 유지할 방침인데, 반대 급부로 야당의 영향력이 과하게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국민민주당은 이날 총리 선거에 앞서 근로소득자 면세 기준인 이른바 ‘103만엔(약 937만원)의 벽’을 178만엔(약 1620만원)으로 상향 개편하자는 등 요구를 내놓은 바 있다.
빠른 시일 내 ‘총리 교체론’이 나올 수도 있다고도 현지 언론은 짚었다. 이시바 내각 지지율이 출범 한 달 만에 30~40%로 내려간 데다, 당내 지지도 크지 않아 내년 7월 참의원 선거와 도쿄도 의회 선거를 앞두고 리더십 변화 요구가 일 수 있다는 분석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자민·공명이 국민민주당만이 아니라 사안별로 입헌민주당, 일본유신회 등 야당과도 협의해 합의를 도출할 수 있는지가 향후 정권을 가늠할 수 있는 시금석이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