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 대응에 냉소적인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면서 11일(현지시간) 시작된 제29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9)가 힘이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대표적 ‘기후 피해국’ 파푸아뉴기니도 보이콧을 선언하며 ‘선진국 책임론’을 부각했다.
이날 오전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막을 올린 COP29의 핵심 의제로는 개발도상국의 기후위기 대응·적응에 필요한 선진국의 ‘신규 기후재원 조성 목표’ 설정이 꼽힌다. 기후위기를 촉발한 선진국이 개도국을 위해 재원을 얼마나 조성할지를 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에서 ‘트럼프 2기’가 확정되며 상황이 달라졌다. 이번 COP에 참여하는 조 바이든 행정부 대표단의 협상력은 크게 타격을 입었으며, 이들이 성과를 낸다 하더라도 내년 1월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하면 무위로 돌아갈 수도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기후변화를 ‘사기’라고 여러 차례 불러왔으며 이번 대선에서도 석유와 천연가스 시추를 늘리겠다고 공약했다. 그는 첫 임기였던 2017년 파리협정에서 탈퇴한 전례가 있어, 바이든 행정부가 다시 가입한 파리협정에서 또다시 빠져나갈 수도 있다.
기후변화 대응 재원에서 비중이 큰 미국의 태도가 이처럼 불확실성과 변동성에 휩싸인 탓에 올해 COP는 성과가 발표되기도 전에 그늘이 드리워진 모양새다. CNN은 “미국의 기후 정책이 180도 바뀌면 다른 국가가 이를 따라 하면서 지구에 재앙이 될 수 있다. 이것만으로도 회담은 실패로 치닫고 있다”고 전했다. 뉴욕타임스는 “기후변화에 맞서 싸우는 파트너로서의 미국의 신뢰성도 위기에 처했다”고 평가했다.
또한 올해 COP를 앞두고 태평양 도서국 파푸아뉴기니가 보이콧을 결정했다. 제임스 마라페 파푸아뉴기니 총리는 “기후변화 피해자에 대한 즉각적인 지원이 없다”며 “강대국에 대한 저항” 차원에서 COP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지난 8월 발표했다. 이어 저스틴 트카첸코 외교장관도 최근 AFP통신 인터뷰에서 COP가 “완전한 시간 낭비”라며 “COP는 공전을 거듭하며 작은 도서국들에 실질적 성과를 가져오지 못했다. 더는 헛된 약속과 무위를 용납하지 않겠다”고 비판했다.
파푸아뉴기니는 주요 탄소배출국의 책임을 지적하며 COP 불참을 선언한 첫 번째 국가다. 파푸아뉴기니 인구는 약 1033만명으로 2020년 기준 1인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0.56미터톤에 불과하다. 그러나 세계에서 가장 비가 많이 내리는 국가로, 기후변화 탓에 폭우가 더 자주 발생하며 산사태와 홍수 위험에 처했다. 해수면이 상승해 작은 섬들이 잠기며 이미 기후난민이 발생했다.
COP는 그동안 미국과 중국 등 주요 탄소 배출국에 책임을 묻는 데 소극적이라는 비판에 처해왔다. 지난해에도 COP를 ‘그린워싱’이라 비판하는 단체가 아랍에미리트(UAE)에 모여 각국에 보이콧을 요구했으며, 아프리카 국가 수십개국은 2009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당해 COP에서 퇴장하기도 했다. 트카첸코 장관은 “왜 이런 말잔치에 가기 위해 돈을 쓰고 있을까. 나는 파푸아뉴기니보다도 사정이 안 좋은 작은 도서국을 대신해서 말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이 올해 COP에 참석할 예정이라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탈레반이 2021년 집권한 이후 첫 참석이다. 유엔은 탈레반을 공식 정권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이에 따라 올해 주최국인 아제르바이잔은 아프간을 정회원국이 아닌 참관인 자격으로 초대했으며, 아프간 관계자들이 별도 회담과 논의에 참여할 수도 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국제구호단체 세이브더칠드런은 아프간을 기후변화의 영향을 많이 받는 국가 6위로 선정한 바 있다. 아프간은 수자원 감소, 식량난 등을 겪고 있어 COP 참석을 계기로 국제적 지원을 받으려 한다는 해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