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트럼프’ ‘김정은’이라는 벌을 받고 있다

이대근 칼럼니스트
윤석열 대통령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윤석열 대통령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미국 시민이 대통령 선거에서 카멀라 해리스와 도널드 트럼프 가운데 트럼프를 선택한 이튿날 윤석열은 국정 전환과 아내 사이에서 아내를 선택했다. 그 전에는 김정은이 러시아에 파병하는 쪽을 선택했다. 각각 다른 땅에서 다른 이유로 이루어진 선택이지만, 공통점이 있다. 잘못된 선택이다.

미국 시민은 트럼프에게 미국이 만든 국제질서를 흔들고 세계를 혼돈에 빠뜨릴 기회를 주었다. 지구온난화를 부정하는 그는 파리협정을 또 탈퇴한다고 한다. 취임 즉시 시행하겠다는 미등록이민자 추방은 인도주의적 재앙을 예고한다. 이주자는 그가 퍼뜨린 인종주의의 먹잇감이 될 것이며, 소수자 혐오는 확산할 것이다.

어떻게 미국인들은 민주주의를 무너뜨리고 세계의 안녕을 위협할 성범죄자, 중범죄자이자 음모론자, 나르시시스트, 포퓰리스트인 그를 선택할 수 있느냐고 물을 자격이 우리에게는 없다. 우리에게는 우리의 트럼프가 있다. 지난 기자회견에서 잘못을 성찰하고 새롭게 출발하기를 바랐던 보수의 간절함을 배반하고 ‘순진한 아내’를 선택한 윤석열. 그는 시민 불만이 국정 성과를 체감하지 못해서 그런 것이고, 김건희 국정개입은 야당이 침소봉대한 것이라고 억울해했다. 그랬으면서도 그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것 같았다.

증기로 터빈을 돌려야 전기가 만들어진다는 얘기를 그로부터 듣고 싶었던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그는 끝없는 수다와 만담, 중언부언, 횡설수설로 상당한 시간을 보냈다. 사과한다면서 사과 이유를 모른다 하고, 변명하는 자리 아니라면서 변명하고, 특검 덕에 출세해놓고 특검을 위헌이라 공격했다.

술 덜 깬 것 같은 그의 장광설에 집중하는 건 정말 어렵다. 그래도 그의 말 가운데 공감할 수 있는 대목을 발견한 것은 놀랍고, 반가운 일이었다. “이런 대통령 처음 봤다.”

김정은의 대규모 파병은 자기 인민을 남의 침략전쟁에 총알받이로 내모는 반인륜적 행위일 뿐 아니라, 3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에 불을 댕길 수 있는 위험천만한 도발이다. 러시아가 미국이나 중국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해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푸틴이 전쟁 끝나고도 그를 필요로 할지는 불투명하다.

세 가지 선택이 드리우는 불길함은 각각의 선택이 불러올 위험에만 도사린 것이 아니다. 진짜 우려해야 할 것은 선택들이 국경을 넘어 서로 만나면서 증폭시킬 위험의 크기와 깊이다. 이미 대화 경험을 한 김정은과 트럼프가 대화를 재개할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푸틴을 버팀목으로 삼는 김정은이 쉽게 양보할 리 없고, 북한에 아쉬울 게 없는 트럼프 또한 마찬가지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트럼프에 의해 끝날 수는 있다. 그러나 트럼프는 평화주의자가 아니라 미국 우선주의자다. 어떤 전쟁은 끝낼 수 있겠지만, 어떤 전쟁은 부추길 수 있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은 계속될 것이다.

윤석열과 김정은은 북한의 러시아 파병을 둘러싼 군사적 긴장을 완화시키는 게 아니라 고조시킬 가능성이 있다. 윤석열과 트럼프가 안보, 경제 쟁점을 타결지을 만큼 죽이 잘 맞으리라는 낙관론의 근거는 빈약하다.

이 모든 문제가 말해주는 건 한 가지, 윤석열이 많은 자원을 동원하고 특별한 노력을 기울여야 난마처럼 얽힌 현실을 겨우 헤쳐나갈 수 있다는 점이다.

가장 중요한 자원은 시민 지지와 결집이다. 국내 기반이 무너진 윤석열은 그걸 할 수 없다. 그가 자기 경호원으로부터 칭찬받은 사실을 자랑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좀처럼 칭찬받기 어려운 대통령이다. 용산이라는 섬나라에 갇힌 왕이며, 외부세계로부터 고립된 외로운 군주다. 그런 이가 트럼프, 김정은과 문제를 잘 풀어나가리라는 기대감을 불러일으키기는 어렵다.

한국 시민은 이렇게 ‘윤석열’이라는 벌을 받고 있다. 시민이 잘못된 선택을 한 대가일까? 그래서 미국 시민도 ‘트럼프’라는 벌을 받는 것일까?

미국 정치학자 래리 바텔스는 최근 포린어페어스 기고문에서 잘못된 선택의 책임은 시민이 아니라 정치인에게 있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부상과 같은 포퓰리즘은 이미 존재하는 시민의 포퓰리즘 정서를 정치인이 반영한 결과가 아니라, 정치인이 포퓰리즘 정서를 동원한 결과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해결책도 아래가 아니라, 위에서 나와야 한다. 윤석열이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국민의힘밖에 없다.

국민의힘은 국정 책임자로서 윤석열로부터 국정을 인수하고 주도해야 한다. 윤석열은 2027년 5월9일 퇴임하겠다는 소망을 피력했다. 그 소망, 이루어질 수 있다.

[이대근 칼럼] ‘윤석열’ ‘트럼프’ ‘김정은’이라는 벌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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