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 자동차·2차전지
IRA 등 바이든 ‘전기차 진흥 정책’ 뒤집는 트럼프 공약
완성차, 생산라인 전환 불가피…배터리, 수요 위축 우려
중국 제재 강화 땐 국내 기업들 반사이익 ‘긍정’ 시각도
‘완성차는 흐리고, 배터리는 먹구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2기 집권을 맞아 국내 자동차 업계가 받을 영향은 이렇게 요약된다.
트럼프 행정부가 전기차 진흥 정책에 태클을 걸면 둘 다 타격이 불가피하다.
미국에서 제조된 자동차와 배터리에 각종 세제 혜택을 주는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맞춰 대미 투자를 늘려온 국내 완성차·배터리 업계로선 자칫하면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신세로 전락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그나마 완성차 업계는 내연기관·하이브리드·전기차 등에 분산 투자하면서 속도를 조절해 시간을 벌 수 있다. 반면, 전기차가 주력인 국내 배터리 제조사들은 보다 직접적인 사정권 안에 놓인다.
자동차 산업과 관련한 트럼프의 공약은 전기차 의무명령 폐지, 화석연료 생산 확대 등 환경 정책 방향 재설정, IRA 폐지, 중국 제품에 대한 고관세 부과 등 크게 4가지로 정리된다. 하나같이 조 바이든 현 행정부의 친환경차 정책을 180도 뒤집는 방향이다.
현대자동차그룹은 내년까지 미국에 74억달러(약 10조3500억원)를 투자하겠다는 계획에 따라 앨라배마 현대차 공장, 조지아 기아 공장에 이어 최근 전기차 공장인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를 설립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으로 전기차 수요가 꺾이면 전기차 생산 라인을 하이브리드카로 일정 부분 전환하는 등 위험 분산 작업에 나설 수밖에 없다.
배터리 업계도 그간 IRA상 첨단제조생산세액공제(AMPC) 혜택을 받기 위해 미국 현지에 조 단위로 투자하며 생산 거점을 빠르게 늘려왔다.
IRA 수혜 규모가 축소되면 가뜩이나 세계 시장을 무대로 한 중국 배터리 업체들의 공세가 위협적인 상황에서 그나마 버팀목이 돼온 북미 시장의 배터리 수요가 위축되고, 국내 배터리 업체들의 수익성 또한 악화할 수밖에 없다.
IRA가 실제 폐지로 이어질지를 두고선 전문가들 간에 의견이 갈린다. IRA 혜택을 받기 위해 타국 업체들이 공장을 지었던 곳이 조지아·미시간·오하이오 등 이른바 쇠락한 공업지역인데 만약 IRA 폐지로 현지 공장 설립이 무효가 되면 고용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현실론’도 만만치 않은 까닭이다.
트럼프 재집권의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고 평가받는 일론 머스크가 전기차 업체 테슬라의 최고경영자(CEO)라는 사실도 간과할 수 없다. 이런 이유로 트럼프라도 쉽사리 칼을 꺼내들지는 못하리라는 게 업계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업계는 오히려 중국을 비롯한 타국에 대한 보편관세 문제를 트럼프가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지를 더 예의주시하고 있다. 삼정KPMG는 지난 7일 낸 보고서에서 “완성차 수출 관세 인상 및 IRA의 전기차 세액 공제 축소 등 영향으로 미국으로의 자동차 수출이 직접적인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미국은 글로벌 최대 자동차 시장인 동시에 한국산 자동차의 수출 비중이 50%에 육박하는 지역이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한국의 올해 1∼9월 미국 자동차 수출 무역수지 흑자는 248억달러(약 35조원)로 한국의 전체 수출 품목 중 가장 많다.
‘아메리카 퍼스트(미국 우선주의)’ 원칙을 강조하는 트럼프 행정부가 어떻게든 무역수지 불균형 해소 차원에서 관세 인상 관철에 나서리란 관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트럼프 당선인이 중국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면 오히려 국내 기업이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긍정적인 시각도 있긴 하다.
내연기관차에 대한 규제 철폐가 이뤄진다면 현대차·기아 등의 내연기관차 판매가 탄력을 받을 수 있고, 배터리 시장에서도 중국 CATL, BYD 등에 맞서 국내 배터리 기업이 점유율을 늘릴 수 있는 기회가 되리라는 전망이다.
이호근 대덕대 미래자동차학과 교수는 “국내 완성차 업계는 시장 상황의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다양한 차종을 생산할 수 있게 대비하고, 배터리 제조사들은 미국 일변도의 투자 전략에서 벗어나 유럽 시장 공략 쪽으로 무게중심을 옮길 필요성이 커졌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