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 전단 vs 대남 풍선…갈등의 골 깊게 파버린 ‘통일 독트린’

곽희양 기자

‘북 붕괴 흡수통일론’ 판박이…접경지역 주민 고통은 후순위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3개월 뒤인 2022년 8월 북한에 선제적 핵 포기를 요구하는 ‘담대한 구상’을 발표했다. 북한은 즉각 퇴짜를 놨다. 북한은 오히려 그해 9월 핵 보유를 법으로 정하며 “비핵화란 없으며 그를 위한 협상도 없다”고 명토 박았다. 나아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해 12월 남북은 ‘적대적 두 국가’ 관계라고 선언했다. 남북이 ‘통일을 지향하는 잠정적 특수관계’임을 부정한 것이다.

북한은 2019년 이후 국가전략 방향을 바꿨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 평가다. 그해 2월 미국과의 핵 협상에 실패한 게 계기였다. 미국 중심적 세계 질서에 편입되려는 기대를 접는 대신 세계 질서가 신냉전 또는 다극화할 것이란 전망하에 러시아로 눈을 돌렸다. 동시에 협상카드이자 정권 유지 수단인 핵과 이를 운반하는 미사일을 발전시켰다.

윤 대통령은 지난 8월 ‘통일 독트린’으로 응수했다. “북한 주민이 자유평화 통일의 주체”라는 독트린은 사실상 ‘북한 주민이 정권 붕괴의 주역이 될 수 있도록 남한이 지원하겠다’는 의미다. 이를 위해 북한 주민의 정보접근권과 인권을 강조했다. 1994년 김일성 북한 주석 사망 이후 보수 정부의 대북정책 배경이었던 ‘북한 붕괴에 따른 흡수통일론’과 다를 바 없다.

이 과정에서 대북전단(일명 삐라)과 오물 풍선 갈등이 나타났다. 대북전단에 맞대응하겠다며 북한이 지난 5월28일부터 날려 보낸 풍선은 지난달 24일까지 30차례 계속됐다. 남한은 9·19 남북군사합의 전체 효력 정지(지난 6월4일), 대북 확성기 방송 전면 실시(지난 7월21일)로 맞섰다. 특히 지난달 평양 상공에 무인기(드론)가 출현하면서 위기는 최고조에 이르렀다.

윤석열 정부는 풍선 살포의 명분이 되는 대북전단을 막을 의지가 없다. 이로 인해 오물 풍선으로 인한 여러 차례의 화재와 재산 피해, 북한의 대남 방송으로 인한 접경지역 주민들의 극심한 피해 호소는 후순위로 밀렸다. 전단과 풍선으로 인한 갈등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제발 좀 서로 의식하지 말며 살았으면 하는 것이 간절한 소원”(김여정 북한 조선노동당 부부장)이라는 북한의 입장과 “북한 땅에 자유의 기운을 불어넣겠다”(윤 대통령)는 남한의 입장 차이가 좁혀질 가능성은 희박하다. 국민들의 피해와 군사 충돌 위험은 지속된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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