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재선 이후 미국 등 글로벌 증시가 연일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지만, 국내 증시는 오히려 하락하며 ‘트럼프 랠리’에서 홀로 소외되고 있다. 관세 강화 등 트럼프 당선인의 ‘미국 우선주의’ 공약이 실현될 경우 대외거래 비중이 90%가 넘는 한국 경제에 미칠 타격이 클 것이란 우려로 외국인·기관 등 매도세가 강해졌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12일 코스피는 전날보다 1.94% 떨어진 2482.57에, 코스닥은 전날보다 2.51% 내린 710.52로 마감했다. 코스피 지수가 2500선 아래로 떨어진 것은 지난 8월 ‘블랙 먼데이’ 이후 처음이다. ‘블랙 먼데이’ 직전인 8월1일(2777.68)과 비교하면 10.62%나 하락한 것이다.
전날인 11일(미국 동부시간) 다우존스30산업평균·S&P500·나스닥종합 지수 등 미국 3대 주가지수가 모두 사상 최고치로 마감한 것과 상반된 흐름이다. 뉴욕증권거래소에서 다우지수는 전장보다 0.69% 오른 4만4293.13에 거래를 마쳐, 처음으로 4만4000선을 돌파했다.
미국 우선주의·강한 보호무역 정책을 내세운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이 미국과 미국 외 주식시장의 수익률 ‘디커플링(탈동조화)’ 현상을 낳을 것이란 전망은 이전부터 나왔지만, 다른 국가와 비교할 때 국내 증시의 하락세는 유독 두드러진다. 일본 닛케이평균주가는 지난 6일 2.61%, 중국 상하이종합지수는 지난 7일 2.57% 오른 후 약보합세를 그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국내 증시가 ‘트럼프 랠리’에 올라타기는 커녕 ‘트럼프 충격’에 휘청이는 이유는 수출입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국내 경제 구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박석현 우리은행 연구원은 “관세 강화를 공약한 트럼프 당선으로 미국 외 다른 나라의 증시 전반이 부진하지만, 국내 타격이 유독 큰 이유는 세계 최고 수준의 대외의존도 때문”이라면서 “트럼프가 보조금 삭감을 공약한 반도체·배터리 업종이 국내 증시 시가총액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도 영향을 줬다”고 분석했다. 이날 시가총액 상위 종목 중 삼성전자(-3.64%)가 5만3000원까지 내리며 4년4개월 만에 최저가를 기록했고, SK하이닉스(-3.53%) 큰 폭으로 떨어졌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한국의 국민총소득(GNI) 대비 수출입 비중(대외의존도)은 90.6%(2분기 기준)에 달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20년 기준 미국의 대외의존도는 31.4%, 일본은 37.5%, 프랑스는 66.1%로 한국보다 크게 낮다. 박 연구원은 “중국 역시 대외의존도가 38%대로 낮은 수준인 만큼, 트럼프 공약이 현실화된다면 당분간 국내 타격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는 환율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이날 오후 3시30분 기준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8.8원 오른 1403.5원에 마감했다. 주간 거래 종가 기준으로 1400원을 넘은 것은 2022년 11월7일 이후 처음이다. 트럼프 당선 이후 강달러 현상이 뚜렷해진 가운데 미국 증시의 강세도 외국인 투자자의 환전 수요를 높이며 환율 상승 압력을 키우고 있다. 외국인 투자자는 이날 유가증권시장에서 2330억원, 코스닥에서 40억원씩 순매도했다. 민경원 우리은행 연구원은 “트럼프 트레이드가 연일 이어지면서 달러화 강세가 외환시장 전반에 영향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당선 이후 비트코인을 비롯한 가상자산이 급등하면서, 국내 가상자산 거래대금이 코스피·코스닥 시장을 압도하는 ‘과열’ 양상을 보이기도 했다. 이날 가상자산 정보 사이트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국내 5대 가상자산 거래소(업비트·빗썸·코인원·코빗·고팍스)의 지난 24시간 총 거래대금은 21조5823억원으로 전날 코스피·코스닥 시장의 거래대금을 합산한 18조2135억원보다 3조원 이상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