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대가 필요한 이유”···‘동덕여대 공학 전환 논의’에 쏟아진 반대, 다른 여대들로 확산

이예슬 기자
서울 성북구 동덕여자대학교에 11일 학교 측의 남녀공학 전환 추진에 반발하는 학생들이 놓은 학교 잠바가 본관 앞을 메우고 있다. 한수빈 기자

서울 성북구 동덕여자대학교에 11일 학교 측의 남녀공학 전환 추진에 반발하는 학생들이 놓은 학교 잠바가 본관 앞을 메우고 있다. 한수빈 기자

서울 동덕여자대학교가 대학발전 계획 검토 과정에서 ‘남녀공학 전환’을 논의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학생들이 점거 시위에 나서는 등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학교 측은 “결정된 건 없다”고 해명했지만 학생들은 공학 전환 가능성 논의 자체를 반대한다. 일부 다른 여대에서도 덩달아 긴장이 고조되는 분위기다.

12일 동덕여대 교정 곳곳이 붉은 색 래커로 적은 ‘학생 몰래 공학 전환 절대 반대’ ‘공학 전환은 입학 사기’ 문구와 학생들이 붙인 항의 대자보로 뒤덮여 있었다. 본관 앞에는 학생들이 항의의 의미로 놓아둔 학과 점퍼 수백개가 펼쳐졌고, 검은 옷에 마스크 차림을 한 학생 300여명이 ‘대학 본부는 공학전환 철회하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서 있었다.

사태는 지난 7일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 동덕여대에서 남녀공학 전환 논의가 있었다는 얘기가 올라오면서 시작됐다. 총학생회를 중심으로 학교 측에 해명을 요구했으나 뚜렷한 답을 듣지 못하자 지난 11일부터 학교 점거 농성과 수업 거부가 벌어졌다.

학생들은 학교 측이 남녀공학 전환 논의에 관한 의견을 학생들에게 묻지 않은 점을 비판한다. 총학생회는 지난 8일 입장문을 통해 “해당 안건이 논의되고 있음에도 대학본부는 지금까지 단 한 마디 언급도 없었다. 8000 동덕인을 무시하는 행위”라고 했다.

학생들은 여대의 존재 가치와 여성에 대한 사회의 인식 등을 들어 여대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과거 사회적 불평등을 받아온 여성이 남성의 차별행위 등을 피해 안전하게 학습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한 여대의 설립 가치가 지금도 유효하다는 것이다. 여성을 향한 차별적인 시선과 폭력이 여전한 상황에서 여대라는 공간은 물리적인 안전의 공간을 넘어 심리적 안정감을 주고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곳이 될 수 있다는 주장도 편다.

동덕여대 2학년 A씨(20)는 “남녀공학 대학도 붙었는데 여대에 오고 싶어 이 학교에 온 것”이라며 “여대에서 배우고 여성으로서 주체가 돼 본 경험이 여성 혐오적인 현 시대를 이겨내는 바탕이 될 거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동덕여대 총력대응위원회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페미니스트로 의심되는 여성을 향한 검열, 숏컷 여성 폭행 등 여성에 대한 차별과 폭력이 여전한 상황에서 동덕여대는 비교적 안전한 울타리이자 생존의 공간이었다”며 “스스로 공학으로 전환하는 것은 학교의 설립 취지와 반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남녀공학 전환 논의에 대해 재학생들이 반발 중인 서울 성북구 동덕여자대학교에서 11일 학생들이 100주년 기념관을 점거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남녀공학 전환 논의에 대해 재학생들이 반발 중인 서울 성북구 동덕여자대학교에서 11일 학생들이 100주년 기념관을 점거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커지는 학생들 공분…다른 여대들도 연대 목소리

시위 학생들에 대한 위협과 조롱이 이런 현실을 보여준다는 지적도 있다.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동덕여대에서 칼부림을 벌이겠다’는 글이 올라와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전날 학교에 출동한 경찰이 “학생분들 나중에 애도 낳아야 하고 이런 불법 행위는 하면 안 된다”고 발언한 사실이 알려져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여대는 역차별이니 사라져야 한다’는 등의 주장이 이어지고 있다.

학생들의 공분과 불안은 다른 여대로 번지고 있다. 덕성여대 총학생회는 이날 대자보에서 “머지않아 우리의 일이 될 수 있다”며 “공학 전환에 강력히 반대한다”며 연대의 뜻을 전했다. 성신여대에서도 이날 국제학부에 외국인 남학생 입학을 허용하는 데 반대하는 ‘과잠(학과 점퍼) 시위’가 열렸다. 성신여대 신모씨(19)는 “외국인 남학생 입학이 동덕여대처럼 공학 전환 논의로 이어질까 많은 학생들이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성신여대 낙향관 앞에 11일 성신여대 과잠과 함께 ‘여대의 소명이 다하지 않았다’고 적힌 종이가 놓여있다. 이예슬 기자

서울 성신여대 낙향관 앞에 11일 성신여대 과잠과 함께 ‘여대의 소명이 다하지 않았다’고 적힌 종이가 놓여있다. 이예슬 기자

동덕여대 측은 “확정된 게 없다”면서 점거 시위 등에 대해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김명애 동덕여대 총장은 이날 입장문에서 “아직 정식 안건으로 상정되지 않은 상태인데 11일 오후부터 학생들의 폭력사태가 발생했다”며 “남녀공학 전환에 대한 안건은 향후 추진 방향을 논의해 알리겠다”고 했다. 성신여대 관계자도 “최근 K-문화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진 만큼 외국인 학생에 한해서 남학생을 입학할 수 있게 한 것”이라며 “공학 전환 논의가 진행된 바는 없다”고 밝혔다.

교육부에 따르면 전국에서 남은 4년제 여자대학은 동덕여대, 이화여대 등 7곳이다. 한양여대를 비롯한 전문대를 더하면 모두 14곳이다. 상명여대는 1996년 남녀공학으로 전환해 상명대로 바뀌었다. 성심여대는 가톨릭대와 통합했고, 대구의 효성여대는 대구가톨릭대와 통합돼 남녀공학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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