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하면 ‘졸림’이 떠오르잖아요. ‘ASMR’(자율감각 쾌락반응)도 수면 유도 콘텐츠로 많이 쓰이거든요. 두 개를 결합한다는 점에서 흥미를 끌 수 있을 거란 생각은 했어요. 그런데 이렇게까지 관심을 받을 줄은 몰랐어요.”
이른바 ‘숙면여대’ 영상의 기획자인 이지연씨(24)는 “신기하다”고 했다. 지난 7월16일 ‘팅글의 정석’이라는 제목의 영상이 온라인을 달궜다. 교수님이 ASMR 형식으로 전공과목을 강의하는 영상이었다. 주제는 제목만 봐도 잠이 올 것 같은 ‘양자점’, 강의 역시 들릴락 말락 한 ‘ASMR’톤을 유지한다. “교수님이 재워주기도 하네” 같은 댓글들이 달렸다.
영상은 2주 만에 조회 수 20만회를 넘겼다. ‘숙면여대’라는 학교의 별칭도 생겨났다. 이씨는 그러나 ‘잠자는 콘텐츠’로만 기획된 건 아니라고 했다. “바쁘신 교수님들 모셔다가 사람들 재우려고 영상을 만들었겠어요? 새로운 ASMR 콘텐츠를 찾아다니는 ‘팅글족’들을 노린 것이었을 뿐이에요. 반응이 폭발적이라 기분은 좋지만 한편으론 잠자는 콘텐츠로만 알려진 게 서운하기도 해요.(웃음)”
이 영상을 제작한 건 ‘숙튜디오’다. 학교 홍보나 소식 영상을 만드는 숙명여대 학생 크리에이터들의 모임이다. 지난해 3월 창단돼 현재 7명 정도가 활동 중이다. ‘팅글의 정석’은 창단 멤버인 이씨가 수료 직전 마지막으로 제작한 영상이다. 기획의 출발은 ‘어떻게 하면 학교에 대한 홍보를 효과적으로 할 수 있을까’였다고 했다. ‘외부’ 뿐 아니라 ‘내부’도 홍보 대상이었다.
“제가 입학할 때 코로나 19가 유행을 했어요. 비대면 수업이 일상화되면서 학생과 학생, 학생과 교수 사이의 연대감 같은 게 실종된 느낌이었어요. 우선은 학생들에게 교수님을 보다 친근한 존재로 만들어주고 싶었어요.”
근엄할 것 같은 교수님이 ‘젊은이들의 콘텐츠’인 ASMR을 시도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직접 인형을 쓰다듬고, 라텍스 장갑을 잡아당겼다가 놓는다. 직접 준비해 온 비눗방울 장난감 뚜껑을 마이크에 대고 딴다. 수면을 유도하는 ASMR을 시전하면서도 능청스럽게 “졸지 마세요”라고 말한다. 어떤 교수님은 대놓고 “재워드리겠다”고도 한다. “(교수님이) 귀여우시다” 같은 댓글이 달렸다.
교수님들을 귀엽(?)게 만드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제작에 참여한 숙튜디오 2기 노연주씨(20)는 “교수님들께 메일과 전화를 수시로 드렸다”며 “5~6번 정도 실패를 거듭한 끝에 한 교수님이 처음으로 응해주셨다”고 했다.
교수님은 무슨 생각으로 섭외에 응했을까? 권우성 교수(숙명여대 화공생명공학부)는 “교수는 강의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대학은 학생들이 다양한 시도와 경험을 하며 사회인이 되기 위한 과정을 밟는 곳이라고 생각해요. 그 과정을 성심껏 도와주는 게 제 역할이라 생각합니다.”
이씨는 영상을 통해 ‘캠퍼스의 낭만’이 전해지길 바랐다고 했다. 그게 ‘진짜 학교 홍보’라는 것이다. “학교를 사랑하는 학생들, 난감한 요구에도 열과 성을 다해주시는 교수님, 그들이 한데 어우러지는 모습이 대학생활의 낭만이라고 생각했어요.”
기획의도는 달성됐을까? 영상에 달린 댓글 중에는 “숙대 원서 쓸게요”, “숙대 합격하게 해주세요 제발” 같은 문구들도 있었다.
“남잔데 나 이거 보고 숙대 지원했다”는 댓글도 있었다.